'필리핀판 트럼프'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당선
범죄와 '피의 전쟁' 예고..인권문제 등 논란 일듯

 

악당은 잔혹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비열한 방법을 다 쓴다. 악당을 맞서 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악당이 되는 것이다. 목적과 결과는 악당을 소탕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을 따져보면 어느새 악당과 닮아가는 역설을 낳는다.  

사실상 필리핀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로드리고 두테르테(71) 시장도 이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야당인 PDP라반의 대선 후보인 두테르테 시장은 10일 약 66%의 개표가 진행된 현재 1322만표를 얻어 집권당인 자유당(LP) 후보인 마누엘 로하스(58) 전 내무장관(776만표)을 500만표 이상 앞섰다. 사실상 대통령으로 확정됐다.  

두테르테 시장은 선거 과정에서부터 뜨거운 논란을 몰고 다녔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은 현재 사형제도가 폐지됐지만, 두테르테 시장은 취임 6개월 내에 모든 범죄를 근절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모든 범죄자를 처형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사 출신인 두테르테 시장은 범죄 척결이 주특기다. 22년간 시장으로 재직했던 필리핀 다바오시를 범죄가 들끓던 도시에서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숱한 인권유린 논란을 낳았다.  

두테르테 시장은 ‘자경단’이라는 비밀 조직을 운영하며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마약상 등 범죄자를 직접 처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1700명을 죽였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이를 뒤집었다. 시장 재직 초기에 중국인 소녀를 유괴해 성폭행한 남성 3명을 직접 총살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은 섬뜩하다. “범죄자 10만명을 죽여 물고기 밥이 되도록 마닐라만에 버리겠다”고 하기도 했고, “피비린내나는 대통령 자리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두테르테 시장 선거캠프의 한 관계자는 “범죄에 대한 강력한 대처 의지를 밝힌 것이지, 모든 범죄자를 즉결 처형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두테르테 시장은 유세장 과정에서 지난 1989년 다바오 교도소 폭동사건 때 수감자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에 대해 “그녀는 아름다웠다. 시장인 내가 먼저 해야 했는데…”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호주와 미국 대사가 이 발언에 대해 공식적으로 비판하자 “입을 닥치라”면서 외교관계 단절까지 경고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를 능가할 정도의 ‘막말’의 소유자다. 

하지만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국민들은 두테르테 시장을 선택했다. 필리핀은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필리핀에서 발생한 살인, 강간, 절도 등 중대 범죄는 35만여건으로 한해 전보다 37% 급증했다. 

마닐라에 사는 세아이의 어머니인 빅토리아 몬세라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두테르테 시장에 투표했다. 우리에겐 규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XM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