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페소 가치가 24일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폭락했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임박한데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취임 이후 마약 전쟁을 벌이는 동시에 미국과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이면서 해외 투자자금의 이탈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링깃에 이어 페소까지 급락하면서 아시아 외환시장의 쇼크 가능성도 대두된다. 

페소 가치는 이날 오전 9시(이하 현지시간) 달러당 50.157페소를 기록해 2008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50선을 넘어섰다. 페소 가치는 이후 달러당 50선에서 오르내리다 오후 1시 34분 기준 50.001페소를 나타내고 있다.

페소 가치가 주저앉은 이유는 해외 투자자들이 무더기로 투자금을 빼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의하면 필리핀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달 필리핀 증시에서 빼간 순유출액은 3억2700만달러(약 3857억원)이 이른다. 
 
유출의 원인은 애초에 필리핀 증시가 고평가된 상태에서 미 대선과 두테르테 대통령이라는 국내외 변수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의하면 필리핀 PSEi지수의 향후 12개월간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16.28배로 추정된다. 신흥시장 증시를 포괄하는 MSCI신흥시장지수에 속한 주식들의 예상 PER 값은 11.9배에 불과하다. PER는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클수록 해당 주식이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거래된다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투자자들이 지난 6월말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하자 신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기대 때문에 증시에 몰렸다고 설명했다. 이후 페소 가치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전쟁을 벌이는 동시에 잇따라 미국을 공격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이달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 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페소를 달러로 바꿔 해외로 빠져나갔고 페소 가치는 더욱 떨어졌다.

필리핀은행(BPI)의 스미스 추아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신흥시장 전반에 자금유출이 일어나고 있지만 필리핀의 상황은 고평가된 증시 때문에 더욱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페소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수익률을 보전하려는 투자자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러한 움직임은 말레이시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4일 말레이시아 링깃 가치는 장중 한때 달러당 4.4675링깃을 기록해 1998년 1월,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신흥시장 가운데서도 해외 투자자들에게 개방적인 말레이시아 자본 시장은 트럼프 당선 이후 링깃 가치가 5.9% 가까이 폭락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자본유출을 겪고 있다.
 
[email protected]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