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의 삶을 통찰하고, 삶의 예수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데요. 평신도의 입장에서 삶의 예수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알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방법이 성서저자들의 1차 해석한 예수님을 성도 각자가 2차 해석해서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데, 성서저자들의 해석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 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 질문대로 현 교회구조에서는 평신도들이 예수를 만나는 방법이 성서저자들의 1차 해석에 의존할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성서의 저자들의 편협함에 있습니다. 성서는 예수가 활동당시에 측근에서 말씀을 배웠던 제자들이 배제되어있다는 겁니다. 현재 성서는 예수의 제자가 아닌  바울의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거지요. 바울의 고백한 예수만을 기록한책이 성서가 되었습니다. 만일.. 이런 바울의 고백이 문제가 없다면 이 고백과 해석또한 가치가 있다고 할수 있지만.. 바울의 예수는 유대의 부활과 메시아 신앙으로 만들어졌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진짜 예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수없게 되어버렸다는 거지요. 그래서 성서를 통해 성도가 2차로 해석하고 고백하는 예수를 삶으로 살아내면  안타깝게도  교회라는 건물에 사로잡혀 성직자들의 뒤치닥거리나 하는 멍멍항아리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기독교의 사람들이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바울이 만든 기독론이라는 교리와 유대교의 허접한 종교관이 문제라는 말씀이지요. 그렇기에.. 멍멍항아리가 되지않기 위해서는  예수에 대한 바울의 1차 고백인 성서에 대한 개념을 다시 잡아야 합니다. 사실.. 신약성서에서 바울을 빼고나면 거의 남는것이 없지요. 그게 어쩔수없지만 토착신학에서는 예수라는 겁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실제로 별거 없습니다. 그가 선생이라고 불리던 랍비라는 사실은 그의 가르침의 대부분이 유대교의 토라에 대한 새로운 해석정도라는 거지요. 우리가 유대교인도 아닌데.. 설령 예수의 해석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겁니다. .. 그래도 예수의 이야기중에는 배울만한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종교라는것은 신을 입으로 찬양하는것이 아닌  이웃의 삶을 돌보는 것이라던가... 종교로 부터 자유하라는 말이죠... 사실 소크라테스하면 " 자기 자신을 알라 " 는 그 한문장뿐인것처럼.. 예수의 가르침도  몇가지밖에 없는것이 당연한겁니다. 바울식으로 고백하니까  유대교의 교리와 물리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 지고 신의 아들이니 부활이니 그리스도니 하는 개념들이 만들어지는것이지... 예수를  스승이라 생각한다면 실제로 예수에게서 배울것은  [이웃이 신이고 신이 이웃]이라는 이 한가지밖에는 없다는 겁니다. 이것으로 예수로 살아가기도 벅차기 때문입니다. 모든것을 이웃에게 나눠주고 예수의 삶을 따르라는 그 명령 한가지만 지키면 예수쟁이 인거죠. 기독교는 이 명령은 따르지않으면서 쓸데없는 종교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로 살아가라는 거지요.. 예수는 배우는것도 아니고 신앙의 대상도 아닙니다. 예수는 삶의 방향입니다. ㅁ,의심하지 말고 믿으라는 말에...꼴딱 속는겁니다. 편견 가득한 선입견만 빼고 읽어도 한결 이해가 쉬울텐데 말입니다. 하다못해 핸드폰 하나 사려고 해도 온갖 것 다 따지고 생각하고 공을 들이면서 성서라는 책을 읽을 때엔 머리를 떼놓고 읽는지... 악(惡)이 위험한 이유는 부지런하고 열정적이며 노력에 비해 과도한 보답을 하기 때문입니다. 평생일을 해도 내집하나없는 교인들이 대부분인 교회에서 집걱정 안하는사람은 직업종교인뿐이죠. .. 종교적인 일은 노동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바울같은 종교 양아치도 평소에는 텐트를 만들어 먹고 살았다는  소리를 한거죠.. 다소 지역의 대부분 유태인들이 지방특산물인 린넨으로 텐트를 만드는일에 종사했고... 바울의 집안도 예외는 아니였겠지만.. 바울은 집안일보다는 로마시민권을 가진 부유한 유대인 부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후원금을 얻어내고 그 돈으로 선교라는 명목으로 여행다니는것을 즐겼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미친듯이 돈 보내달라는 편지질을 해댄겁니다. 그런 쓰레기같은 열정을 물려받은겁니다. .. 가톨릭이야.. 로마국교이후에 권력이 빌붙어서 대단한 부를 쌓았으니  사제라는 직원들을 지금도 월급주며 먹여살릴만 하지만... 루터를 따라 신장개업한 개신교는  누가 후원자인가에 따라 살림살이가 천차만별이더니.. 이젠 완전히 개인사업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종교가 사업이 되었지만 여전히 목사들은 일은 하지않고  그잘난 설교로 먹고살 궁리만 하는겁니다. 편지질하며  닥달하던 바울을 쏙빼다 닮았습니다. .. 목사들이 좋아하는 구절중에.. 일하는 소입에 망을  씌우지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말입니다. 그런데 하라는 일은 안하고 사람들 모아놓고 입만 털고 있으니까 그입에는 망을 씌워야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