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긴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는 국가가 있다. 바로 필리핀이다. 가톨릭 국가로서 크리스마스 명절을 9월부터 12월까지 무려 100일 가까이 지낸다. ‘버먼스(Ber Month)시즌’으로 불리는 이 기간에 국민은 자신들의 1년 소득 중 많은 부분을 소비한다. 그러나 작년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코로나가 창궐하여 과거에 즐길 수 있었던 갖가지 먹거리와 볼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아쉬움이 매우 컸다. 필리핀은 올해 9월까지 일일 확진자가 2만6000명까지 급증하며 최고치를 찍었으나 백신접종률(1차 기준 51%)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지금도 이곳에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뜨겁게 느껴지고 있다. 사무실, 백화점 등 많은 건물 안에 다양한 트리가 놓여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크리스마스의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 이미지에 반해, 필리핀의 무덥기까지 한 크리스마스가 새삼 낯설기도 흥미롭기도 하다. 특히, 올 시즌에는 보복소비심리에 의한 소비가 커지면서 그간 피폐된 상권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으며 주로 판매되는 품목은 장난감, 가전제품, 의류, 식료품 등이다. 필리핀 경제 부문의 한 축을 차지하는 필리핀 해외노동자(OFW)는 외화를 자국으로 송금해 궁극적으로 내수 부양에 큰 공헌을 한다. OFW의 취업지역은 사우디아라비아(22.4%), UAE(13.2%), 미국(8.1%) 순으로 많다. 필리핀 전체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며 송금액은 필리핀 GDP(3614억달러)의 10%가량에 달한다. OFW의 대규모 송금은 중앙은행의 외환보유 재정 건전성 제고 및 환율 방어에도 크게 기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리핀 정부의 외교정책으로 OFW 권익 보호가 우선시 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최근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동지역 고유의 노동계약 시스템인 ‘카팔라 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OFW에 대한 고용주의 압도적인 통제권으로부터 발생한 임금체압, 이동제한 등 부당근로조건에 시정조치를 요구한 내용이다. 한편, 20년 1월~10월의 OFW의 외화송금액은 246억달러이었지만 21년 같은 기간 송금액은 259억달러에 다다른다. 전년 대비 약 5.3% 증가했으며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필리핀 경제회복이 가시화되는 대목이다. ‘13월의 월급(13th month pay)’이라 불리는 법정상여금은 필리핀의 크리스마스를 더욱더 따뜻하게 한다. 모든 근로자는 연간 총소득을 근무한 개월 수로 나눈 금액에 대해서 고용주로부터 매년 12월 24일 이전에 받을 권리가 있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소비의 경제효과는 내수 활성화에 또 한 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치 ‘공돈’이 생긴 것 같은 기분 탓일까. 코로나로 인해 필리핀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2년째 시름을 앓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도 크지만, 출입국 이후 일정 기간 격리 등 국경 간 이동제약도 만만치 않다. 하루빨리 코로나 시국이 해결되어 올 연말을 기점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OFW들이 자국에서 가족들과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란다. 김동현 코트라 마닐라무역관 과장 https://n.news.naver.com/article/016/0001929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