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법원이 면책특권이 있는 외교관이라도 사법적 특권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BBC 방송에 따르면 6일(현지시각) 영국 대법원은 런던에서 필리핀 가정부를 착취한 혐의로 고소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관에 대해 “외교 면책특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로 필리핀 가정부는 해당 외교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필리핀 가정부의 변호인은 “이런 종류의 판결은 세계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필리핀 가정부 조세핀 웡(30)이 2018년 “사우디 외교관 칼리드 바스파르가 현대판 노예제를 방불할 가혹한 조건에서 집안일을 시켰다”며 영국의 노동재판소에 제소한 데서 시작됐다. 변호인에 따르면 웡은 쓰레기를 버릴 때 말고는 집에만 머물러야 했다. 또 바스파르 가족으로부터 폭언에 시달렸고 그들이 남긴 음식을 먹어야 했다. 웡은 매일 오전 7시부터 밤 11시 30분까지 일했으며 호출 벨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다가 어느 때라도 부르면 달려가야 했다. 2016년 사우디에서 영국으로 온 뒤에는 일곱 달 동안 임금을 주지 않다가 어느 날 여섯달치 월급이라며 계약한 것보다 훨씬 적은 1800파운드(280만 원)을 지급했고 그 이후엔 주지 않았다고 한다. 바스파르는 웡의 제소는 외교 면책특권에 따라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 대법원은 법관 2대1 찬성으로 “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바스파르가 웡을 착취한 것은 ‘상업적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면책특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은 31조에서 외교관이 주재국에서 사법적 소추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며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외교 업무와 무관한 상업적 활동은 민사 소송 대상이 된다. 재판부는 “2년에 걸친 노동력 착취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실행된 상업적 활동”이라고 판단했다. 웡의 변호인 누스라타 우딘은 “이번 판결은 의뢰인을 위한 정의이며, 외교관에게 착취당할 위험에 있는 모든 잠재적 피해자를 위한 정의”라고 밝혔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1/0004073960?sid=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