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6월이 왔고 한국의 학생들이 몰려오는 시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티가스의 학원 원장님께서 지인이 운영하는 퀘존쪽의 학원에 매니저를 급히 구하는데 나보고 그쪽에서 일하는 게 어떠냐고 하십니다. 올티가스의 학원은 소규모 학원이라 내가 강의하는 만큼만 벌어가는 구조이고, 퀘존쪽은 규모가 커서 매니저도 하면서 남은 시간에 강의까지 하면 더 많이 벌 수 있는 곳이라 퀘존으로 옮기기로 하고 아내와 답사를 가보았습니다. 쇼볼리바드에서 MRT를 타고 GMA에 내려, 다시 페어뷰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드넓은 커먼웰스 도로위, 에버몰 근처에 학원이 있었습니다. 학원규모가 상당히 컸고, 그 주변으로 한국식당, 마트, 하숙집 등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올티가스보다 한국 사람들이 더 많이 보였습니다. 매니저라는 일이 강사관리, 학생들의 수업 스케줄 관리, 학부모관리, 돈 관리까지 거의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근무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고정급 6만페소. 1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첫 달은 진짜 정신이 없었습니다. 학생 및 학부모 관리는 한국에서도 해왔던 일인지라 그리 어려움은 없었는데, 필리핀 강사관리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특히 필리핀 강사들의 근태관리가 어려웠는데, 처음으로 필리핀 사람들과 일을 매개로 접해보니 여기서 알게 모르게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생겨났던 것 같았습니다. 한국인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필리핀 강사들은 버젓이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필리핀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어떤 현상이 발생하면 그 현상을 일으킨 필리핀 강사들을 탓하기보다 그 현상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필리핀에서는 필리핀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 그들과 함께 호흡해야지, 한국인의 사고방식으로 그들과 호흡하면 가래만 끓어오르고, 문제해결은커녕 더 심한 갈등만 초래된다는 것을 3개월 만에 터득했습니다.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월급을 현금으로 받는 것이 낯설었고, 필리핀 강사들에게 월급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도 낯설었습니다. 월급을 받은 강사들은 저마다 은밀한 곳에 월급을 숨기기 시작합니다. 속옷 안이라든가, 아니면 양말 속에 숨기기도 합니다. 버스나 지프니안에 강도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첫 달 동안 대중교통을 잘 이용했던 나에게도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불렀습니다. 아내도 필리핀 사람인지라, 바로 달려와 주었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그것도 맨 앞자리에 앉아, 전철로 갈아타지 않고, 커먼웰스에서 엣자 스타몰까지 두 손 꼭 잡고 버스 안에 강도가 있는지 없는지 눈을 굴리면서 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천페소짜리 60장은 나의 존재를 아내에게 다시 한 번 각인 시켜주었고, 우리는 에스크리바 드라이브에 있는 황소막창에서 소고기를 구워먹고, 맥도널드로 가서 맥플로트를 후식으로 먹었습니다. 장마가 한창이던 7월. 6시에 일을 끝내고, 10시까지 4타임을 잡아 학생들에게 어법 및 독해를 가르쳤습니다. 아침에 7시에 나와 집에 돌아가면 11시.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은 진짜 기가 빠집니다. 게다가 하루 종일 별난 학생들과 유별난 엄마들을 상대하면 그야말로 그로기 상태가 됩니다.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 돈을 벌어야 했고, 몸은 힘들어도 한 송이 장미 같은 아내를 떠올리며 뼈가 부서질 때까지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다짐을 수 없이 합니다. 아내도 모든 인센티브 조건을 채우며 악착같이 일하면서, 밤늦게 까지 일하는 나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규시간만 일해도 6만페소를 벌고, 그 수입이면 충분한데, 왜? 몸을 혹사시켜가며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느냐? 입니다. 이런 점이 한국인과 필리핀인의 차이인 것 같았습니다. 필리핀 강사들도 오버타임을 하면 1.5배의 임금을 주는데도 8시간 땡 하면 더 이상 일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장의 돈이 급한 강사들은 오버타임을 하긴 했지만.... 혹독한 노동의 대가는 120,000페소의 달콤한 열매로 보상을 해주었고, 아내는 터질 것 같은 봉투를 보고 졸도를 하였습니다. 아내의 친구가 BDO은행에서 근무를 해서 통장을 개설해 줍니다. 차곡차곡 돈이 모이는 재미로 필리핀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 방값 15,000페소 그리고 생활비로 20,000페소를 주었는데 아내가 알뜰한 것인지 아니면 소비를 덜 하는 것인지 10,000페소면 생활비로 충분했습니다. 필리핀의 전기세가 비싸다고 하여도, 둘 다 회사와 학원에서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을 쐬니 집에 오면 선풍기만 사용했습니다. 가전제품이라고 해봤자 냉장고 그리고 밥이나 요리할 때 쓰는 2구짜리 전기스토브, TV는 보지도 않았고 그러다 보니 전기세, 물세 합쳐서 천페소 내외로 나왔습니다. 9월이 되자 한국의 초중고 학생들은 모두 돌아가고, 필리핀에서 유학하는 학생들, 그리고 성인 학생들 몇몇만 남았기에 또한 남아있는 학생에게 필요만 필리핀 강사들만 남아서 그 커다란 학원에 매일같이 적막감만 흘렀습니다. 학원의 재정 관리까지 했기에 약 3개월간의 수입과 지출을 계산해보니 약 3천만원 정도 흑자가 났습니다. 그 흑자가 난 돈으로 비수기 때 적자를 메꿉니다. 9월 10월 두 달 동안 다가오는 겨울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재 선정도 하고, 필리핀 강사들도 미리 미리 좀 선발하는 등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는데 돌발 상황이 발생합니다. 오래 동안 학원을 운영하셨던 원장님이 갑자기 학원을 파셨습니다. 새로운 원장님이 오셨고, 그 때부터 일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합니다. 학원이라는 것이 그래도 교육 서비스업인데, 경영과 교육 둘 다 모르는 새로운 원장님이 오셨으니 학원을 말아먹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새 원장님이 오시고 3개월 후에 안 사실인데, 전임 원장님이 아무것도 모르는 새 원장님에게 알차게 가격을 매겨 거의 사기수준으로 팔았더군요. 학원 안에 있는 집기류라고 해봤자 책, 걸상, 사무 가구 그리고 낡아빠진 에어컨, 수리가 필요한 컴퓨터, 학원퍼밋 등등과 미래에 이 학원에서 공부할 학생들의 가치를 포함해 1억원에 팔았다고 합니다. 객관적으로 봐서 잘 쳐줘봐야 2~3천만원입니다. 역시 필리핀에서는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사기를 치는 모양입니다. 학원을 팔자마자 바로 미국으로 떴습니다. 동시에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학원 규모로 보면 한 달에 학생이 100명이 오면 수익이 그리 남지 않고 , 150명이 오면 1천만원이 남고, 200명이 오면 2천만원 이상이 남는 그런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그해따라 한국의 경기가 좋지 않았는지 학생들이 많이 오지 않았습니다. 전임 원장님이 학원을 파실 때 11월부터 2월까지 꾸준히 200명 이상 유지했다고 뻥을 친 것인지 아니면 진짜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말을 믿은 새 원장님의 착각이 재앙이 불렀습니다. 그해 11월에 50명이 왔습니다. 당연히 적자입니다. 그런데 새 원장님도 이리 저리 돈을 끌어 모아 인수를 했기 때문에 여유 자금이 없었고, 겨울 방학 시즌이 시작되는 첫 달부터 필리핀 강사들의 임금이 체불되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필리핀 강사들의 임금은 남겨 놓아야 하는데 원장님은 임금 체불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어보였고, 임금이 지불되지 않으니 남아 있던 수업을 내팽개치고 가버리는 강사, 나를 찾아와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강사, 갑작스러운 사태에 학생과 학부모들의 항의 등등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립니다. 나의 임금은 체불되어도 이해하고 넘어가겠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필리핀 강사들의 임금 체불은 나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웠고, 수업을 팽개치고 나간 필리핀 강사들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학부모들의 강력한 항의 덕분인지 다음날 어디서 돈을 마련해온 원장님이 강사들의 임금을 주었는데, 수업을 팽개친 강사들은 바로 해고를 하더군요. 그것도 참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한국 사람도 필리핀 사람도 참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12월에는 많은 학생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임금체불 사태를 겪은 기존의 50명의 학생들 중 대부분이 다른 학원으로 가버렸습니다. 소문은 이미 그 동네에 다 퍼져서 우리학원에 올 학부모들이 이미 다른 학원으로 등록을 하고, 필리핀에 처음 어학연수를 오는 학생들, 기존 방학마다 왔던 학생들 해서 그럭저럭 150명은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북적북적해서 겉으로는 활기가 띠어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불신이 쌓여 어수선했고, 원장님도 학부모들의 항의에 기가 죽었는지 더 잘해보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삽질을 더 많이 하십니다. 학생모집에 있어서 한국에서 학원으로 바로 온 경우는 수업료를 정상적으로 다 받는데, 근처의 하숙집이나 홈스쿨, 그리고 캠프전문 브로커들이 학생을 보내주는 경우는 학생 1인당 수업료의 10%를 그들에게 커미션으로 줍니다. 그런데 임금체불 소문 때문에 가뜩이나 학생들이 오지 않는데, 이런 약점을 이용해서 사장님들이 10% 이상의 커미션을 요구하고 심지어 캠프전문 사장님들은 30%의 커미션을 요구합니다. 사실 30%를 떼 주면 진짜 남는 것이 없는데 울며겨자먹기로 원장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빛 좋은 개살구였습니다. 아주 우스운 경우도 보았는데 돈안토니오쪽에 목사 부부가 있었는데, 방학마다 한국의 교회에서 학생들을 그 목사 집으로 보내는 모양입니다. 개구리 왕눈이의 여자 친구 아로미의 아빠인 투투처럼 생긴 목사 마누라는 겉으로는 우아한 척 하지만, 뒤로는 커미션을 진짜 잘 챙겨먹었습니다. 그 목사는 무지개 연못의 폭군 메기 같았습니다. 목사면 선교활동에 주력해야 하는데 선교활동은 뒷전이고 홈스쿨을 통해 돈벌이를 기막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집 딸래미나, 조카나 갑질에 익숙해져있고, 그 집에서 보내주는 학생들 상태도 엉망입니다. 어학연수 온 아이들은 학원에서 싸움을 수 없이 일으키고, 홈스쿨을 하는 학생들은 모두 한국에서 자퇴하고 온 아이들입니다. 자퇴한 학생이라고 편견은 없지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술, 담배는 기본입니다. 이런 학생들을 사랑으로 돌봐야할 목사가 필리핀에서는 하나님을 빙자한 돈벌레 그 자체였습니다. 한 때 올티가스 북경에서 아내랑 짜장면을 먹고 있는데 북경 2층에 있는 교회의 목사라는 놈이 필리핀 여성을 양옆으로 6명이나 끼고 술 먹고 담배도 태우고, 시끄럽습니다. 그래서 담배는 좀 꺼달라고 했더니만, 목사라는 놈이 술에 취해 개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멱살을 잡았는데 가게 사장님 때문에 참았습니다. 그리고 바기오에 있을 때 밤에는 KTV가고 낮에는 축구만 한다고 자랑하던 선교사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필리핀에 있는 기독교 사역자들이 왜 이런지.... 요즘도 간혹 필고게시판을 보면 같은 교민끼리 잘 지내자는 글을 간혹 보지만, 그 당시에 내가 본 교민들은 자기 이익 앞에서는 양보란 절대 없으며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빼먹으려는 독사 같았습니다. 아마 그들도 그 이전의 한국 사람들에게 호되게 당했겠지요. 그때부터 필리핀에서 한국 사람과 만날 일도 없었지만 한국 사람과 절대 교류를 하지 않았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