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필리핀 전역에 울려 퍼지던 크리스마스. 재정 관리를 하는 입장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거금 300만원을 들여 크리스마스 파티를 거하게 합니다. 원장님 입장에서는 학원의 실추된 이미지를 타개하고자 하는 필사의 몸부림일 수 있지만, 주변에서 학생들을 공급해주는 브로커들에게 우리 학원은 그야말로 호구였고, 원장님의 바람과는 달리 한번 실추된 이미지는 그 지역에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처절하게 망해가는 길로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격랑 속에서 표류하는 돛단배의 운명이었습니다. 12월 말이면 중, 고등학생들이 어학연수를 오는 시기입니다. 자력으로 학생모집이 어려우니, 그 지역의 하숙집, 홈스쿨 브로커들에게 학생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 지역의 하숙집과 홈스쿨을 운영하시는 분들도 학생들을 유치하고 학생들을 어학원에 공급해야 먹고 살 것이고, 그런 식으로 공생관계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원장님께서 주변의 하숙집, 홈스쿨 하시는 브로커들에게 접대를 해야 한다면서 샤넬인가? 한국식 단란주점에 따라갔습니다. 현란하게 돌아가는 사이키 조명아래 필리핀 여성들이 단체로 룸 안으로 들어와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그 보로커들은 각자 자신들이 심어놓은 여성들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빠르게 지명을 한 후 개판 모드로 들어갑니다. 보아하니, 브로커들이 50은 넘어 보이던데, 그들의 인생에 낀 지저분한 때만큼 참 더럽게 놉니다. 지명당한 필리핀 여성들도 그들의 스타일을 아는지 능숙하게 비위를 맞추고 있었지만, 그들이 노는 모습은 마치 악덕주인이 노예의 목에 쇠사슬을 채우고 노예시장에 노예를 팔러가는 그런 광경이었습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들의 유치찬란한 개뻥같은 필리핀 정착기나, 현실성 없는 미래의 사업계획, 또는 필리핀이라는 나라,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험담 등, 그런 이야기들을 듣느라 참 고역이었는데, 마치 그들은 사이비 교주 같았고, 원장님은 교주의 설교를 열심히 듣고, 조종당하는 그런 신도 같았습니다. 그들이 개 같이 놀고 있는 틈을 타서 잠깐 밖에 나와 담배를 한 대 태우는데 갓 20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성이 어울리지 않게 짝 달라붙는 호피무늬 원피스를 입고, 굽이 높은 힐을 신은 채, 조금 전 룸에서 왜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원망 비슷한 그런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봅니다. 그녀의 눈에도 내처지가 애잔하게 보였을까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여성이었는데 대충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며칠 동안 손님들에게 선택을 받지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었습니다. 까만 피부를 가리려 노력한 화장에, 큰 눈에 진한 쌍꺼풀, 그리고 눈 밖으로 빼낸 긴 속눈썹에, 갈색톤의 눈썹, 두툼한 입술이 도드라지는 빨간 립스틱을 발랐지만 그녀의 옷차림과 외모는 화류계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말 못할 사연들을 그녀의 겉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를 데리고 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손님에게 선택을 받으면 얼마를 받는지 몰랐지만, 그녀는 안도하는 듯 했고, 나는 열심히 탬버린을 치고, 그녀는 열심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 기억에 그녀는 노래를 참 잘했습니다. 2시간쯤 지났고, 자리를 파했습니다. 브로커들에게 2차를 붙여주고, 계산을 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그 여성이 또 나를 원망 비슷한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룸안에 브로커들은 모두 2차를 가는데 나는 집으로 가니까 실망해서일까요? 계산할 때 보니까 2차비가 4천페소였는데, 원장님이 나보고도 2차를 가라고 하십니다. 잘되었다 싶어 4천페소를 팁으로 그녀에게 쥐어주니 개구리 왕눈이가 울 때 무지개 연못에 내리는 비처럼 펑펑 우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의 눈물인지 잘 몰랐지만, 임금이 체불되어 펑펑 울던 학원 강사들을 떠올려 보니 아마도 돈이 급하게 필요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돈을 가운데 놓고 산다는 것 자체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 하니 쉽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녀가 그 4천페소의 돈으로 내일도 모레도 견딜 수 있을 만큼 잘 견디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갔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안젤라였습니다. 아내의 조카이름과 똑같아서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과 그 이후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몇 번을 더 보았습니다. 브로커들에게 약발이 통했는지 중, 고등학생 및 대학생들을 많이 보내줬습니다. 커미션은 떼어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강사들 월급 밀리지 않고, 건물 관리비나 전기세 수도세 밀리지 않고, 제본소에서 받아 온 책값도 밀리지 않고, 수업에 필요한 비품도 사고, 어느 정도 한 시름은 놓았습니다. 12월의 수입과 지출을 계산해보니 천만원은 남아야 하는데 밀린 것 계산하고 원장님이 어디서 끌어온 돈 갚고, 13month까지 지불하니 거의 본전치기는 한 것 같았습니다. 13month 제도를 그때 처음 알았는데, 12월에 받는 13month. 이 제도가 참 좋아보였습니다. 약 3만페소 정도를 받았는데 장모님께 용돈으로 드리니 장모님도 펑펑 우셨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돈만 받으면 왜 이리 펑펑 울까? 결혼 후 한국에서 처음 맞이한 아내의 생일에 형님과 누님이 각각 10만원씩 용돈을 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아내가 펑펑 울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아내의 대답은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았다는 격한 감정 때문에 울었다고 합니다. 절대 멈추지 않는 국방부의 시계처럼 2013년의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럭저럭 장사는 잘 되고 있었습니다. 브로커들도 커미션 받는 재미에 학원에 자주 들러 학생들을 공급해 주었고, 가끔씩 젊은 필리핀 여성들과 함께 왔는데, 자세히 보니 샤넬에서 본 여성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숙집 브로커가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을 등록시키러 왔는데 그 대학생들 옆에 안젤라와 다른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어학연수 보다 화류계 연수에 먼저 입문한 모양입니다. 그 학생들과 전반적인 어학연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안젤라는 파티션이 있는 공간에 앉아 있었는데 나와의 뜻밖의 마주침에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등록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그 동네에 있는 나인웨이브? 수영장에 간다고 하였습니다. 수수한 화장에 청바지와 반팔 면티를 입은 안젤라는 싱그러운 풀잎의 대학생 같아 보였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건이 엉뚱한 곳에서 터집니다. 임금체불을 겪고 난 다음, 학생들에게 받는 수강료에서 강사들의 월급을 먼저 떼어놓고 난 다음에 남은 수입을 달라고 원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학생들이 2~3달 어학연수를 하면 비자연장도 해야 하고, SSP도 만들어야 합니다. 당시 학원에 비자를 담당하는 꾸야가 있었습니다. 사건이 터지고 난 다음에 안 사실이었는데, 관광비자 한 달 연장비용에 대행료를 붙여 3500페소를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연장비용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익스프레스로 하면 약 3000페소, 일반으로 하면 약 2100페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한 학생당 1400페소를 남겨먹고, SSP의 원래비용이 4740페소였는데, 원장님은 6500페소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남겨 먹은 돈만 해도 천만원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원장님이 진정한 사기꾼이 아닐까 싶었고, 남의 나라에서 아는 것이 없으면 그 자체가 비용이란 것을 또 깨달았습니다. 평화롭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집니다. 원장님과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홈스쿨 가디언 한 분이 오셔서 자기 학생들의 SSP 서류를 달라고 하십니다. 비자를 담당하는 꾸야에게 SSP서류를 드리라고 했는데, 그 꾸야가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없다고 합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원장님한테 비자 연장비용은 받았지만, SSP 비용은 받지 못해서 만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가디언이 고래고래 큰 소리를 지르며 항의를 하고, 학원에 계시던 몇몇 학부모들도 덩달아 SSP 서류를 달라고 하였고, 조금 전까지 보였던 원장님은 줄행랑을 치고 결국 나만 사기꾼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모른다고 항변을 해도 그 분들에게 돈을 받은 사람은 나였기에 그 사람들의 정당한 항의는 내게는 참을 수 없는 수모 그 자체였습니다. 그 소문은 다시 순식간에 퍼져 SSP 비용을 낸 모든 사람들이 학원으로 몰려와서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버렸습니다. 코너에 몰려 정신없이 두들겨 맞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원장님은 전화기 꺼놓고 잠수를 타고, 강사들은 또 임금체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의 눈빛을 하고 있었고, 학생들, 학부모들 모두 나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사형수가 사형날짜 받아놓고 기다리는 심정 같았습니다. 학부모들에게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난 다음, 정규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강사들을 긴급히 불렀습니다. 월급날도 아닌데 1월 달에 일한만큼의 급여를 일당 형태로 다 줬습니다. 강사들의 불안함을 달래는 동시에 내일의 수업을 진행시키고, 더 이상 학부모들에게 항의받기 싫어서 내렸던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어둠이 어느 정도 깔린 저녁, 영혼까지 다 털린 몸을 이끌고 퇴근을 하는데 누군가 어설픈 한국말로 오빠하고 부릅니다. 그 동네는 한국 사람이 많아서 그냥 지나치는데 오빠하고 또 부릅니다. 돌아보니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떤 여성이 나에게 손짓을 하며 내게로 옵니다. 자세히 보니 안젤라였습니다. 학원에 있는 대학생을 기다렸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나를 2시간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 나를 기다렸는지 신기해서 물어보니, 예전에 4천페소를 주었는데, 2차를 가지 않았고, 안젤라에겐 4천페소라는 돈을 팁으로 받아본 게 처음이라 그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웃을 힘도 없었는데 그녀의 엉뚱한 말에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그건 2차 비용이 아니라 그날 노래를 정말 잘해서 주는 팁이었다고 말해주고, 마음의 빚을 탕감해주니 저녁이라도 대접하겠다고 해서 그녀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1970이라는 한국 식당이었습니다. 그녀의 말로는 샤넬에 있는 여성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라고 합니다. 식당 안에 들어가 보니 어학연수생으로 보이는 한국 남성들과 화류계 여성으로 보이는 필리핀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삼겹살에 소주를 시켜 먹는데 나도 그렇지만, 그녀도 술은 잘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뺀또라는 것도 팔아서 잠시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얼떨결에 따라왔지만 자리가 어색하기도 하고, 둘 다 영어에 그리 능숙하지 않아서 딱히 주고받을 말도 없었습니다. 화류계 여성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런 감정이지만, 그런 싸구려 동정은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냥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해주고 그 직업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화류계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꾸미는데 돈이 많이 들고, 씀씀이가 헤픕니다. 그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걱정이라면 걱정인데, 그녀가 계산을 합니다. 최근에 가게에서 손님을 좀 받았나 봅니다. 그녀의 호의에 상처내기 싫어서 잘 얻어먹었다고 했습니다. C2를 마시며 버스를 타기위해 좀 걸었습니다. 그녀에게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야 미로 같은 화류계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그녀의 손에 2천페소를 쥐어주었습니다. 그녀는 극구 사양했지만, 삼촌이 조카에게 주는 용돈이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그녀의 처연한 모습.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원망 섞인 눈으로 나를 애처롭게 바라봅니다. 안젤라는 미로같은 화류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미로가 무슨 뜻인지는 알까? 아마 모를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약 3개월 후에 그녀를 또 만납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