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연상의 이승만을 사랑한 '호주댁'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1900∼1992) 여사는 '호주댁'으로 불리곤 했지만, 실제로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다.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호주)를 혼동한 이들이 오해한 것. 한때 미국인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원래 이름은 프란치스카(Franziska)였는데, 나중에는 프란체스카(Franzeska 또는 Francesca)를 사용했다. 이 전 대통령은 아내에게 '이금순', '이부란'이라는 한국어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인처스도르프(현재는 빈에 포함)에서 태어난 그녀는 관광차 스위스 제네바에 갔다가 상하이 임시정부의 전권대사 자격으로 국제연맹에 독립을 청원하러 온 이승만과 사랑에 빠졌고, 1934년 10월8일 오후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다 재혼이었다. 프란체스카는 1920년 독일의 자동차경주 선수와 결혼했지만 3년 만에 이혼했다. 이 전 대통령은 10대 때 동네 친구와 결혼했지만, 아들(이봉수)을 7살 때 디프테리아로 잃은 데 이어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프란체스카는 25살 연상인 남편의 건강을 극진히 보살폈다. 영부인 자격으로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에 입주한 뒤 어떤 방문객이 남편을 만날지 개입해 보좌관들과 마찰을 빚었다거나, 박마리아(1906∼1960)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녀의 남편 이기붕(1896∼1960)이 2인자로 발탁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승만-프란체스카 부부는 외국인을 백안시하는 주변의 시각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원만했지만, 아이는 낳지 못했다. 전주이씨 양녕대군파 혈통을 중시한 이 전 대통령은 후사를 잇는데 집착했고, 이강석(이기붕의 아들)과 이인수 전 명지대 교수를 잇달아 양자로 들였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1960년 4·19 의거 후에는 하와이에서 동맥경화로 고생한 남편을 보살폈다. 이 전 대통령 사후에는 오스트리아에 가 있다가 1970년 귀국했고, 1992년 이화장에서 눈을 감은 뒤 동작동 국립묘지 남편 곁에 묻혔다. https://www.yna.co.kr/view/AKR20151006200200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