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살면서 가장 미스테리한 부분이 진을 소주처럼 마시는 문화였어요. 동네에서 꼰대들하고 마시면 히네브라 산미겔을 스트레이트로 막 원샷하는데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잔이 돌아올때마다 죽겠더라고요. 예컨데 위스키나 럼을 마시는건 이해하는데 진을 쌩으로 마시는 나라는 없거든요. 토닉워터나 과일쥬스에 섞어 칵테일로 마시죠. 필리핀 꼰대들에게 물어보니 자기들도 모르더군요. 산미겔이 시골까지 뿌려주고 싸니까 마시는거 같았어요. 이렇게 마시다보니 필리핀 진 소비량 세계 1위고 전세계 생산량 43퍼센트가 필리핀에서 소비됩니다. 무지하게 기이한 일이죠. 도대체 필리핀은 왜 진을 이렇게 미친듯이 마실까요? 1762년부터 1764년까지 20개월정도 영국이 마닐라를 침공했어요. 프랑스와 영국 전쟁에 스페인이 프랑스 편을 드니 영국이 빡처서 마닐라를 점령하고 루손섬 중부까지 올라갔어요. 이때 영국군이 진을 가져옵니다. 영국군이 근사하게 마시는거보고 스페인 사람들과 필리핀 부자들도 와 멋있다 하면서 마시게 됐습니다. 수요가 생기니 1834년 키아포에 진양조장이 생깁니다. 진은 사탕수수 알콜에 쥬니퍼베리랑 향신료 넣어 디스틸하면 되니 만들기 쉬웠거든요. 이 양조장을 히네브라 산미겔이 인수하면서 진이 필리핀 전역에 퍼집니다. 싸고 광고 무지막지하게 때리니 그냥 우리나라 소주먹듯 한거죠. 농구를 이용한 광고가 기가막혔어요. 근데 소주같은 알콜에 물탄 맛없는 술을 마시는 우리나라 비하면 더 나은것 같기도하네요. 근데 또 소주가 이제 세계적으로 뜨고있으니 술이란게 맛있다고 잘팔리는게 아닌듯합니다. 저는 독일 한식당에서 만오천 주고 마신 소주가 인생에서 젤 맛있었어요. 물론 그냥 평범한 참이슬인데 만오천원주니 맛있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