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퇴근해 집에 가 보니

내 방 선반위에 있던 배불뚝이 배낭이 날씬해져 있었습니다.

-저게 지 혼자서 다이어트 했을리도 없고.

 

 

이상타 싶어 배낭을 집어 들었더니 정말 속이 텅 비어있었습니다.

도둑이 들었다면 배낭 째 가져갈 일이지 내용물만 쏙 빼갈리 없어

아래층에 있던 헬퍼를 불렀습니다.

-아그야. 이게 어찌된 영문여.

 

 

뭔 시츄에이션인지 알겠다는 듯이 해죽 웃으며 옆에 있는 서랍장을 열어 보입니다.

거기에 가방에 있던 온갖 잡동사니 진열?돼 있었습니다.

한국 모텔서 슬쩍해 온 콘돔에서부터(한국에 나가면 찜질방이나 모텔서 자주 자거든요^^ )

치질 약에 발뒤꿈치 각질 벗겨 내는 도구들까지 나란히 나란히 모여 있었습니다.

 

 

또 욕실장에는 세면도구를 비롯 맥가이버 칼에 로션과 비상약까지 진열돼 있었고

수영팬티와 물안경 속옷, 양말은 옷장에-

선식을 비롯 녹아 뭉툭해진 쵸컬릿과 사탕 과자 등 비상식량은 모두

부엌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출장이나 여행 갈 때 이 배낭만 들쳐 메면 어디서든 대엿새는 버틸?수 있는

그런 구급가방 역할을 하고 있는 내 유일한 보따리를 이 처럼 다 분해??? 해 버렸으니-

참 난감했습니다. 내 치부를 다 들킨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헬퍼 역시 내 가방을 열어 보곤 ‘이 인간 간첩아녀-’하고 혀를 찾을 게 뻔합니다.

출처가 궁금할 온갖 잡동사니에 는 다 들어 있었으니 말입니다.

 

 

상황이 묘해지자 서로 얼굴만 보다가 민망한 나머지 내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아그야 내도 프라이 버시란 게 있응께 제발 가방꺼지는 냅둬라.

투덜거리는 내 인상이 좀 그랬는지 해죽해죽 웃기만 하던 헬퍼 얼굴이 돌이 됐습니다.

그래도 질세라 하는 말이- ‘맘’이 하래서 그랬다는 겁니다.

 

 

‘맘’은 제수씨를 말하는 겁니다.

발렌시아 집과 까가얀 집을 교대로 오가며 일을 하는 헬퍼에게 옷 잘 안 갈아 입고,

방도 너줄하게 쓰는 시아주버니를 위해 제수씨가 헬퍼에게 단단히 일러 놨나 봅니다.

벗어 놓은 옷은 다 빨고, 시간 나는 대로 주변 것들도 다 정리 해 놓으라고-

 

 

덕분에 헬퍼한테 내 비밀스런 것들이 다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배낭에서 콘돔까지 나왔으니- 이젠 프라이버시고 나발이고 없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니도 내꺼 다 봤응께 나도 네 빽좀 들여다 보자’ 할 수도 없고-

암튼 잘난 헬퍼하고 살자니 사건 없는 날이 별로 없습니다.

-그나저나 이거 제수씨한테까정 소문이 나면 안되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