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에 계속 있으니

한국 사람이 그립고

좋은 분들이 많은 필고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라는 다르지만 이런 저런 삶의 이야기들이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저는 결혼 2년정도 되었는데요

제가 우즈벡여자와 결혼하게 된계기가 필리핀 여자 때문이었습니다.

 

결혼 직전까지 필리핀 여자 한명을 만났고

다른 필리핀 여자와는 다르게 괜찮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급격히 가까워 졌었습니다.

다니던 대학의 기말고사도 안보고 그 여자 보려고 필리핀에 입국 하기도 했었죠.

아예 그곳에서 지내면서 가까이 있으려고 다니던 대학 자퇴하고

체류비 건지려고 하숙집 인수도 알아보고

마닐라에 있는 라살대학인가 거기 프리메드 코스도 등록하려고 서류다 준비 했었습니다.

 

그 여자 만나기 이전에도 워낙 필리핀을 좋아했고

그곳 사람들도 좋아했기 때문에

더욱 빨리 가까워져 결혼 이야기도 오갔고 그 여자 집에도 자주 갔었습니다.

물론 직장이나 일하는 동료들도 친하게 되었고

선물이나 용돈을 주거나, 가족 여행도 가곤 했지요.

 

잘 사는 집안 여자가 아니라 택비시부터 식비, 쇼핑 뭐 모든 비용을 제가 내는..

흔한 필-코 커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제가 이 여자와 가족들의 돈줄에 불과 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한국이나 외국인과 결혼하여 가난에서 탈출하고자

저와 만나려는 느낌이 들어 제가 한국에 와버렸고

이후 제가 줬던 현금카드에 돈도 안보내주고

연락도 잘 안하니까

한바탕 크게 싸운적이 있었지요.

 

제가 직접적으로 그 여자에 대해 부정적인 일을 겪은건 아니나

뭔가 이용당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만나던 남자와의 성관계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대놓고 하는것부터

또 잠시 사이가 소원해졌을때

다른 한국인을 만난 사건 등..

이런걸 겪으면서 지조있고 보수적인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평소 러브인아시아를 자주 보는데

우즈베키스탄 여자분이 이슬람문화권이라 가족에 충실하고

행실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즈벡으로 바로 날라가서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는데

저에게 처음으로 한 말은

'당신 로멘틱 합니까?'

 

이곳의 다른 보통의 여자들처럼 아버지의 엄격한 감시? 속에

남자와의 연예는 상상도 못하고 27년간 모태 솔로로 살아 왔더군요.

 

암튼 속전속결로 결혼하고 와이프가 한국에 왔는데

제가 하던 사업이 잘 안되고

급한 마음에 사채도 빌리고

사채 갚으려고 사채 또 빌리고.. 그거 막으려고 또 사채 빌리고..

결국 감당이 안되는 수준까지 빚이 불어나서

자포자기로 살며 살던 집도 빼고

고시원과 모텔을 전전했습니다.

신혼의 대부분을 고시원에서 지냈는데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그 좁은 곳에서 1인용도 안되는 소형침대에서 2명이 자고

덥고 시끄럽고 유흥가에 있는고시원이라 이상한 사람들 많고

핸드폰도 끊기고 갖고 있던 노트북도 이자 내려고 팔고

와이프는 심심해 죽었을거예요.

저는 12시간~15시간 피시방에서 야간 알바 하느라

와이프는 혼자 고시원을 지켰지요.

 

사실 와이프에 대해 깊은 마음이 있던건 아니었는데

어느날 제 친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한겨울인데 와이프가 역근처에서 얇은 옷 하나 걸치고 배회하는것을 봤다고.

생각해 보니 정신없이 빚에 시달리느라

와이프한테 천원도 못주고 겨울옷도 한벌도 못사주고

고시원에 음식도 없고..

마침 제 핸드폰에 체크카드 결제 실패 2300원이 뜨더군요.

와이프가 배가 고팠는지

편의점에서 빵사는데

제 은행 통장에는 2300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이 너무 힘들어서 이혼하자고 하니

농담 아니고 통곡을 하더니 갑자기 자살시도를 하더군요.

시늉이 아니었고 제가 빠르게 잡아채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네요.

그때 이 여자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저는 용기를 내어 결혼을 반대하던 어머니께 돈을 빌리고

갖고 있는 모든것을 다 팔아서

좀더 넓은? 모텔로 옮기고

와이프와 저는 인천 남동공단의 자동차 엔진몸체 생산 사출업체에서

12시간 주야간 교대 근무를 같이 했습니다.

이 모텔에 있을때 정말 저희는 행복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빚에 시달렸는데

와이프의 진실됨이 정말 좋았고

와이프 또한 모텔에서의 시간을 저희의 황금기로 이야기 하더군요.

모텔이 넓고 뜨거운 물도 잘 나와서 좋았다고 ㅋㅋ

이후 와이프는 임신을 하여 우즈벡에 돌려 보냈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처방해준 기형아 방지 엽산제 살돈도 없고

라면도 못먹일때가 있어서

아기 생각해서

빚내서 항공권사서 돌려보냈습니다.

 

이후 제가 재기를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결국 해외수출쪽으로 잘 풀려서

돈을 모을수 있었고

법원의 개인회생이 받아들여져서

매월 200만원 내던 대출상환금을

40만원으로 줄일수 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힘들때 제 돈줄을 끊고

제가 돈이 없는것을 알게 되니

약간의 빌린돈의 독촉을 더욱 심하게 하며 문자와 전화로 욕설과

비난을 끊임없이 한 제 부모형제 가족과 달리

와이프는 항상 저에게 용기와 힘을 실어주었고

와이프 가족도 안타까워 하며 장인 어른도 오히려 와이프에게 남편에게 순종하고 잘 하라고

하더군요.

 

암튼. 전 결혼을 한 이후에 사채를 잘못 써서 최악의 시간을 보냈는데

거의 모든것이 해결되고 이제 풍족하게 되고 있으니

지난 일들을 회상할 여유도 생기네요.

 

참, 제가 만났던 필리핀 여자는 일산에 사는 한국인과 바로 결혼했더군요.

우연히 그 한국인의 싸이에서 그 여자와 같이 놀러가고 찍은 사진을 봤는데

저와 같이 간 모든 곳에서 남자만 바뀌었지 똑같은 배경의 사진이었고

뭐 제가 사준 옷입고 찍은건 괜찮은데

날짜를 보니?? 내가 끝내자고 한 날짜 전이네요?

헐..

 

아.. 쓰다보니 그 필녀분들을 부정적으로 썼는데

필리핀 분과 잘 살고 계신분도 있고..

다만 제가 잘못 만난거라 생각하구요

 

지금 제 앞에서 자고 있는 한달 갓 넘은 아기가

너무 소중한게..

와이프 임신 했을때 주변에서 낙태 강요를 많이 받았습니다.

가족들도 너 지금 돈도 없고 빚만 있고

피부색이나 인종도 한국인이 아니라 아기도 인생이 힘들거라고..

나중엔 제가 지속적으로 먹는 스트레스 관련 약을 언급하며

기형아 100%라고 낙태 강요하고 뭐 별일이 다 있었지요.

 

지금도 제 가족들은 와이프를 못사는 나라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다음주에 한국 돌아가면

제 짐 집에서 다 빼고

주민등록도 엄마밑에 있는데

새로 제 와이프와 아기 이름으로 우리 세 식구로

등본 만드려고 합니다.

 

아 쓰다보니 너무 두서 없고 길어졌네요.

암튼.. 전 지금이 너무 좋습니다.

 

참, 사진은 왼쪽이 와이프, 오른쪽은 와이프 셋째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