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反芻) - 17 -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다!!!
영업을 쉬는 동안 붙이던 게임판은 의외로 짭짤한 수익을 줄때도 있었다. 간혹 앞전의 유혹이 강렬하게 밀려 올때도 있었지만, 난 최대한 나 자신을 자제키로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한두번의 운이라는 놈이 따라줬기에 극한을 딛고 일어섰던 적이야 있었다지만, 그런 경험들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결국엔 나를 병들고 상하게 만들 것이 자명하기에...
정x주... 난 살아오면서 많고도 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겪었지만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내가 이루려던 꿈의 대부분을 이놈과의 악연으로 인해 잃게 된다. 이놈 이야말로 내 생에 최악의 인연이었다. 이십대 초반의 가리봉동 시절... 이놈을 만났다. 전남 무안군 일로읍 놈인데...가리봉에선 목포 출신으로 행세했다. 십대때 상경해서 가리봉동에 들어온 놈으로...
웨이터 생활을 하면서 또래의 건달들과 면을 트게됐고 얼마 후 건달 친구들의 이름을 팔아가며 스스로 건달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건달이 무슨 벼슬이라고 기질도 전혀 못되면서 건달 흉내를 내고, 스포츠 머리에 건달 양복을 맞춰입고 팔자 걸음을 하고 다녔다. 공돌이나 웨이터들의 삥뜯기에, 3종 업소들을 드나들며 외상술 마시기, 아니면 업소의 어린 아가씨들을 꼬드기거나 말을 안들으면 공갈로라도 자신의 성욕을 채운다던가...
아무튼 양아로서의 온갖 기질은 다 갖춘 놈이었다. 순천파의 같은 조직 또래였던 친구녀석이 동향 친구라면서 소개를 시키는데 첫인상은 그런데로 괜찮아보였다. 첫대면 임에도 사근사근하게 비위도 잘 맞추고, 언변도 좋은 놈 이었다. 당시엔 놈의 진면목을 몰랐으므로...
젊은 혈기들이 그렇듯이 첫날부터 의기투합한 우린 당시 놈의 살림방에서 밤을 새가며 소주에 맥주에 막걸리까지 동이 터오도록 퍼댔다. 난 놈이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허름한 단칸 월셋방에서 공장을 다니던 동거녀에 갓낳은 딸아이가 있었다. 아기가 얼마나 이쁘던지 난 까꿍이라는 별명까지 지어줬고, 그별명은 놈과 나의 사건이 일어나던 날까지도 불려질만큼 난 놈과 내가 친구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놈이 동네에서 막걸리 폭력질을 일삼다가 구속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곤, 재판을 받고 나올때까지 난 매주 두세번씩 까꿍이가 좋아하던 요플레를 잔뜩 사들고 놈의 집에 들러 슬그머니 봉투를 놓고 온다거나 아니면 일부러 어려운 살림을 알면서도 놈의 동거녀에게 밥을 차려달라고 해서 김치에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 한 양푼 그득 맛나게 먹고 오기도 했다.
친구랍시고 아무도 놈을 면회 간다거나 집을 찾아주는 이가 전혀 없었기에 난 더더욱 놈의 곁엔 나라도 있다는 걸, 아무도 없는 게 아니란 걸, 놈의 동거녀에게 인식 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빵 사는 동안 여자가 떠나버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는 건... 군대를 다녀온 이라도 잘 알것이다. 몇달 후, 재판을 받고 나온 놈은 날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움을 표시 했다. 가까이 붙어 생활 한 적은 없었지만 놈은 바닥에서 늘 내가 자신의 친구임을 드러내고 다녔고, 나 역시 놈을 친구로 인정해 주었다.
그랬는데, 그렇게까지 대해줬는데... 놈이 날 배신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날도 가게에서 게임 예약이 잡혀 있었는데, 한동안 뜸하던 놈이 선배들과 함께 나타나 놈도 게임 하고싶어 왔다며 눈치를 보길래 난 극구 말렸다. 가리봉동에서 손바닥만한 칸막이 술집을... 그것도 놈의 동서란 자와 동업을 하면서 파리 날리기 일쑤인 가게에서 제대로 된 수익도 없는 놈이 자신의 아내가 집에서 하루종일 부업으로 한푼 두푼 모은 돈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놈의 표정엔 아쉬움과 날 향한 서운함이 고스란히 묻어났지만, 놈의 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옆 룸으로 데려가 같이 술을 한잔 나누는 도중, 문제의 범죄꾼(?)녀석들 딱지라며 후배넘이 들고 들어왔다. 조회를 해보니 신고 들어간 게 아니길래 그걸 정x주에게 건네줬다. 아직 문제된 적이 한번도 없었고, 오백의 20%라면 놈의 가게에서 이삼일 동안 뭐빠지게 벌어도 순수익으론 건지기 힘든 돈이었기에 까꿍이 옷이라도 사입히라며 건네줬던 것이다. 20%라는 고수수료에 의아해하는 놈에게 난 별 생각없이 대강만 설명을 해주었고... 그게 사단이 된 것이다.
몇일 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x부 경찰서 강력계의 곰이 간만에 소주나 한잔 하자며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왔다. '고과점수땜에 기소중지자 작업이나 부탁할려고 그러나?' 하고 별 뜻없이 나간 자리에서 난 참으로 어이없는 얘기를 들어야했다.
내 가게에서 게임이 자주 붙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딱지를 내가 고수수료를 받으며 일명 깡을 해주고 있다는 소스를 넘기러 온 놈을 대충 달래보내고 내게 역정보를 주러 만나잔 것이었다. 일단 그 날부터 게임을 중지하고, 동생들 입단속을 시킨 뒤, 예전 바닥 후배들을 만나 정x주의 행적등을 따보라는 지시를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안돼서 난 더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됐다. 바닥을 등진지 수년이나 지난 나를, 한때나마 내가 관리했던 바닥에서 날 씹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날 아는 업주들 가게에 가서 공술을 얻어마시면서, 또는 야식집에서 어린 웨이터나 삐끼들, 심지어는 어린 여종업원들 앞에서 까지도...
난 지금도 그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억하 심정이 있었길래...내가 놈에게 무슨 한맺힐 잘못이라도 했다고..." 내 앞에선 감히 임마 소리도 못하던 놈이...나 역시 이유모를 광분에 사로잡혔다. 전화를 돌렸다.
"영수야! 니 아이들 좀 쓰자!" 광명시 친구 녀석의 직계 후배였지만, 평소 날 직계 선배 이상으로 어려워하고 따르던 녀석이었다. 간혹 용돈을 보태주거나 일처리를 맡기기도 했던... 놈의 가게 상호와 전화번호등을 일러주고 즉시 수배해서 내 가게로 잡아오라는 지시를 했다. 그날 자정이 못된 시각에 놈은 잡혀왔다. 이미 몇 대 맞은 흔적이 보였다.
헛가오를 잡아보려다 꼬맹이들에게 맞은 것이다. 가게로 잡혀오면서 대충 짐작을 했는지 날 보자마자 놈은 울며 소리쳤다. "현이! 자네가 뭔가 오해를 한거여! 난 증말 몰랐는디, 내 동서란 놈이..." 꺼이꺼이 아예 대성통곡을 한다. 어리석은 놈이었다. 내가 묻기도 전에 제 입으로 실토를 한 셈이다. 흐느끼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린 친구잖은가 현이, 내가 자네헌티 을매나 잘혔는지 자넨 알잖는가 응? 한번만 봐주시게... 나가 이참에 아예 이사도 가불고, 동네엔 얼씬도 않을라네, 그러니 봐주소 응?" 마음이 착잡했다. 지난 십여년 동안 놈과 난 결국 친구도 개뿔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버둥거리며 애원하는 놈의 비굴이 꼬맹이들 앞에서 부끄러웠다. 그때까지 듣기만하던 난 입을 열었다. "그래! 살려는 주지..." 돌아서 가게에 데리고 있던 후배를 불렀다. "성진아, 갖고 와라! 그리고 이놈 질질 짜는게 너무 듣기 싫다." 한놈이 시보리(물수건) 두어개를 뭉쳐 놈의 입에 쑤셔박았다.
소파 두개를 마주 세워 간격을 벌린 뒤, 놈을 길게 가로 뉘였다. 몇놈이 놈의 양팔과 양 다리를 굳게 부여잡은 채... 곧이어 후배넘이 야구방망이를 갖고 들어왔다. 그걸 보자마자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놈의 얼굴에선 식은 땀이 배어나왔고, 알수 없는 괴성이 룸안을 가득 채웠다.
참으로 오랫만에 쥐어보는 야구 뱃트였다. 난 놈의 시선을 마주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놈의 왼쪽 무릎을 향해 방망이를 내리쳤다.
잠시 기절했던 놈이 깨자마자 난 조용히 말했다. "요즘 뺑소니 사고가 많아서 문제다. 그치?" 황급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놈을 병원으로 실어 보내고, 밤이 새도록 혼자 술을 퍼마셨다.
다음날 병원에 들러 놈의 상태를 확인하고 수술비와 치료비등을 지불했다. 입원비는 추후 정산키로 하고... 놈은 날 보자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잘못했다는 말을 남발 했지만, 난 믿지 않기로 했다.
이틀 후, 내게 역정보를 건넸던 문제의 형사와 그 팀원들이 출동해서 나를 달아갔다. 경찰서 보호실로 달려온 후배들을 병원으로 보냈더니 놈은 이미 비밀리에 다른 병원으로 옮겨간 뒤였고, 그후 1심 재판과 항소심이 끝나는 내내 흔적도 없이 잠수를 타버렸다.
아무 생각도 안들었다. 유치장에서의 일주일 내내...
'마누라 몸 풀려면 몇달 남지도 않았는데...' 그때까진 죽고싶단 생각따윈 들지도 않았었다!!!
AI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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