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이 피임 법안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급증하는 인구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정부가 빈곤층의 피임을 지원하는 법안을 표결 처리키로 하자 가톨릭 교계가 대규모 시위를 열며 반대에 나선 것이다.

필리핀 하원은 6일 출산율 억제를 골자로 하는 출산보건법안에 대한 오랜 논쟁을 끝내고 수주 내 찬반 투표를 실시키로 했다. '콘돔 법안'이라 불리는 이 법안은 ▦빈곤층에게 무료 콘돔 배포 ▦교내 성교육 및 산모 보건교육 실시 ▦가족계획 정보 제공 ▦에이즈 경각심 고취 등이 핵심 내용이다. 이 법안은 인위적 피임을 반대하는 가톨릭 교계의 반대로 무려 11년 동안 계류돼 오다 최근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이 적극 나서면서 정치권의 이슈로 부상했다.

인구 1억400만명에 육박하는 필리핀은 세계 최고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조출생률(인구 1,000명당 출생자)은 25명으로, 한국(8.4명)의 3배, 미국(13.7명)의 2배 정도다. 전문가들은 필리핀 빈곤의 원인으로 폭증하는 인구를 지목한다. 특히 저소득층은 콘돔을 살 여유가 없고, 가족계획에 대한 인식도 부족해 평균 출산율이 부유층의 2배인 6명에 달한다.

그러나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가톨릭 교계의 반대로 법안 통과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4일 수도 마닐라의 성모마리아 성당에는 1만여명이 모여 "생명 보호" "출산보건법안 폐기" 등을 외치며 정부와 의회를 성토했다. 판가시난주의 소크라테스 빌레가스 대주교는 "피임은 타락"이라며 관련 법안이 "무책임한 성관계를 부추기고 아기들을 성가신 존재로 만든다"고 규탄했다. 아시아 최대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다. 아키노 대통령의 어머니인 고 코라손 아키노도 1986년 시민혁명으로 대통령에 오를 때 가톨릭 교회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키노 대통령이 2010년 당선 이후 부패 청산, 정부지출 감소 등을 통해 6% 이상의 고속성장을 이뤄내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이번 법안으로 최대 도전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황수현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