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한국인 재력가를 암매장한 뒤 자취를 감췄던 공범이 모두 경찰에 붙잡힌 가운데 피해자 정 모(41)씨가 심한 폭행을 당하던 도중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윤 모(34)씨 일당은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필리핀에서 재력가로 알려진 정 씨를 마닐라에서 납치한 뒤 앙겔라스 시로 이동했고 피해자의 집에서 금품을 가져오기로 한 정 모(32)씨를 기다리던 도중 마을 경비원에게 발각됐다.

윤 씨 등은 현지 상황에 익숙한 송 모(41)씨를 불러 가까스로 상황을 모면했지만, 돌발상황에 당황한 이들은 우발적으로 피해자 정 씨의 목을 조르는 등 생명이 위협할 정도로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사건 다음날이 돼서야 정 씨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를 숨기기 위해 사체를 묻게 됐다면서 범행 경위를 털어놨다.

앞서, 피의자 정 씨는 지난 10일 필리핀에서 윤 씨 등 3명이 경찰에 붙잡히자 훔친 돈 2,300여만원을 불상의 계좌로 송금한 뒤 마카오를 거쳐 말레이시아로 달아났다. 정씨는 도주 중에도 훔친 돈을 빼내 마카오 카/지/노에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1일 피의자 정 씨를 체포하면서 수사가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조사를 받던 정 씨는 추가 공범인 송 씨가 있다고 밝혔고 경찰은 26일 송 씨를 추적해 자진귀국시켰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정 씨에 대해 살인 및 사체 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송 씨는 경찰서로 인치해 조사하고 있다고 27일 밝혔다.

송 씨는 이들의 범행을 방조하고 사체를 암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경찰은 우발적으로 정 씨를 살해했다는 이들의 진술과는 달리 "범행 도구를 치밀하게 준비한데다 자신의 얼굴을 아는 피의자들을 그냥 돌려보낼 리는 없을 것"이라며 이들이 정 씨를 살해할 것을 미리 계획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집중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또 윤 씨 등이 훔친 신용카드로 현금을 더 인출했을 것으로 보고 이들의 금융계좌와 필리핀 현지 계좌 내역 등에 대하여도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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