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단독] 홍석동 납치사건8 – 범행의 기승전결(1) : 수배자에게 납치된 수배자
[단독] 홍석동 납치사건8 – 범행의 기승전결(1) : 수배자에게 납치된 수배자
2012. 9. 21. 금요일
취재팀장 죽지 않는 돌고래
1. 결정적 제보자의 등장
회사원 홍석동, 1981년생. 2011년 9월 1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휴가 중 연락두절.예비역 공군 소령 윤철완, 1974년생. 2010년 8월 30일, 필리핀 여행 중 연락두절.
두 사람의 행방을 알고 있을 유일한 사람은 이 둘을 납치한 장본인, 즉, 2007년 안양 환전소에서 여직원을 살해하고 필리핀으로 도주, 수년간 납치행각을 일삼아 온 최세용 일당뿐이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납치했는지, 그들에게 납치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정확히 몇 명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납치 피해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최세용 일당은 필리핀 한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달에 많게는 3, 4건의 납치행각을 벌였고 불과 4개월 전에도 필리핀 마닐라 중심가에서 현지 교민을 납치, 감금 폭행해 금품을 뜯어냈다.
현재, 납치단 리더 최세용과 서열 2위로 알려진 행동대장 김종석의 행방은 묘연하다. 검거된 일당들은 윤철완, 홍석동 씨의 생사를 묻는 질문에 ‘살아 있을 것’이라는 애매한 말만 반복한다. 자신들은 그들의 실종에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본지는 지난 반년 간, 납치 피해자들과 접촉하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들을 수소문해 왔다. 특히 두 사람의 생사에 대해 알 가능성이 높은 피해자, 즉, 윤철완, 홍석동 씨 납치 직후의 피해자를 찾는데 주목했다. 하지만 이 노력은 허사였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되었다 3일 만에 풀려난, 아직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 한 명과 만났다.
납치일, 2010년 9월 7일.
윤철완 씨 납치 추정일자로부터 불과 일주일 후다.
2. 납치 D-3 : 납치단 리더 최세용을 만나다.
<매일경제 1996 10 29일자 기사>
백명주. 전 백이기획 대표이사.
1990년대 중반, 패션명함 사업으로 20대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고 한국에서 첫 섹스숍을 개장해 5개월 만에 60개 이상의 체인점을 열었다. 90년대의 사회분위기상, 필연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설 수 밖에 없었던 당대의 이단아. 당시의 신문지상에서 심심찮게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논란 탓일까. 백명주 씨는 미풍양속을 헤치는 인물이자 당시의 사업과 관련, 경제사범이 되어 수배자 신세가 되었고 지난 15년간 국외에서 도망자 신세로 살아 왔다. (이 복잡한 사연에 대해서는 후에 별개의 특집 기사로 다룰 예정이다.)
납치는 그런 그의 도망자 생활 막바지에 일어난 일이다. 지금부터 당시의 사건을 재구성해본다.
돌이 본인, 백이 백명주 씨다.
돌 : 어떻게 필리핀으로 가게 된 건가요?
백 : 2010년에 중국에 있었어요. 도망 다니던 와중에 중국 쪽에서 내가 너무 알려져서 한국 대사관에선 여권을 처리할 수 없었죠.
백명주 씨는 수배자 신분으로 출입국이 금지되었기에 친척의 여권을 이용, 중국에서 도망자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지난 15년간, '백명주'가 아닌, 여권에 기재된 친척의 이름인 '백현우'(가명)로 살아왔다.
2010년 9월, 백명주 씨는 오랜 기간, 홍콩과 마카오 등지를 왕래했기에 여권의 사증란이 곧 부족해 질 상황, 여권을 계속 쓰기 위해선 하루빨리 대사관에서 증면을 요청해야 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백명주씨를 알아보는 사람이 등장해 여권 증면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백 :그래서 필리핀 대사관에 여권을 연장해보려고 마닐라에 방문했던 게 시작이예요. 2010년 9월 첫째 주.
돌 : 9월 첫째 주.
백 : 그때 필리핀에 도착해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필리핀 관련 인터넷 카페를 뒤졌어요. 마닐라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어느 식당이 괜찮은지, 어디 가면 분위기 있는 술집이 있는지, 이런 주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카페에 들어갔는데, 최세용이 올린 글을 본 거죠.
필리핀 납치단의 리더, 최세용.
백 : 보니까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올렸어요. 필리핀 화산에 가서 사진 찍으려고 하는데 동행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내가 연락을 했지요. 난 새로운 거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남겨진 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던 거죠.
돌 : 그때가 필리핀 도착 첫 날이었나요?
백 : 네, 9월 5일이예요. 왜냐면 9월 3일이 내 생일이라서 기억해요. 생일 막 하고 간 거니까.
그런데 그 날 내가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었는데 최세용이 나를 만나려고 무던히 애를 썼어요. 몇 시간 동안. 나는 필리핀 지리를 모르니까 만날 장소를 잘 못 찾았고 그 사람은 계속 헤매면서 나한테 왔지요.
돌 : 그때는 마닐라에 있는 호텔에 있었겠네요?
백 : 첫 날은 민박집에 있었어요. 한국 사람이 하는 민박집. 호텔이 아니니까 그 사람이 그렇게 찾기 힘든 거였지요. 최세용이 길바닥을 헤매면서 몇 시간을 보냈는데, 세 시간, 네 시간이 걸려서 나를 만나러 온 거예요. 얼마나 미안했겠어요?
돌 : 돌이켜 보면 집요한 거군요.
백 :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까 집요한 건데 그때는 굉장히 고마웠지요. 오히려 나는 그 사람이 안 올까봐, 걱정했으니까. 나는 좋은 기회를 놓치기 싫었으니까요.
물론 여권 페이지 수 증면하려고 마닐라에 간 거지만 다른 어떤 이벤트가 있으면 좋잖아요.
최세용이 여행 다니면서 글을 쓴다고 했으니, 최고죠. 가이드도 되겠다, 차도 있다고 하지. 아마 돈을 내라고 해도 제가 냈을 거예요.
돌 : 화산에 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인원이 부족하다고 글을 올린 건가요?
백 : 자리가 남는다고 했어요. 일박이일 일정인데 차량하고 숙소도 제공되고. 기업체로부터 큰돈은 아니지만 지원을 받는대요. 저는 감사하죠. 참, 한국사람 좋다, 라고 생각했고.
만났을 때는(최세용이 나를 찾느라 시간을 많이 썼기 때문에)밤이 늦었죠. 조금 일찍 만났으면 그 날 내가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지만 좀 늦게 만났기 때문에 술집이고 뭐고 웬만한 데는 다 닫혀 있었고.
돌 : 그럼 처음 만났을 때가 저녁이 넘었겠네요?
백 : 밤 열한시가 넘었어요. 원래는 일곱 시 쯤 보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그 사람이 나를 못 찾았던 거죠. 나는 ‘여기가 뭐가 있고요, 좌측에는 무슨 퍼시픽 은행이 보이구요.’ 이런식으로 설명하고.
그런데 은행이 한 둘이 아니잖아요? 그 사람이 택시타고 다니면서 여기 은행 갔다가 저기 은행 갔다가(서로 계속 통화하며 위치를 설명한 끝에)만난 거죠. 막상 만나니까 할 것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편의점 앞에서 맥주 한 잔 씩 먹고. 최세용도 얼굴에 진이 다 빠져 보였고.
그 날은 그렇게 맥주 한 잔 하면서 서로 얘기를 했어요. 어떻게 필리핀에 여행을 하게 됐는지, 나는 중국에서 살고 있는데 뭘 하고 있는지.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유난히 질문이 많았네요.
돌 : 항상 그 과정이 있더라구요. 신상파악.
백 : 질문에 순서가 있어요. 일단 나에 대해 먼저 물어보지 않고 내 가족에 대해서 궁금해 하죠.
돌 : 아, 가족.
백 : 일단 결혼유무에 대해서 물어보고, 아내는 뭐 하냐, 맞벌이 하냐, 아이가 있냐, 부모님은 뭘 하시냐, 이렇게 내 주변부터 물어봐요.
돌 : 그게 되게 자연스러운가 봐요? 그 과정이. 처음 만나서 그렇게 묻기 힘든데.
백 : 그 사람 입장에서는 나를 잡았을 때 돈은 어차피 내 주변이 보내주는 거니까, 그거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런 모든 과정들이 지나고 나니까 다 한 템포, 한 템포 이상한 거죠.
그런데 그 순간에는, 한국사람 처음 만나서 서로 족보 캔다고 그러나? 고향은 어디세요? 어느 학교 나오셨나요? 이거하고 분위기가 별 다르지 않아요. 고향은 서울이세요? 네. 결혼하셨나요? 네. 그럼 와이프 되시는 분은? 뭐 이런 식이니까.
돌 : 스무스하게 가네요. 그런데 이쪽에서도 질문을 던질 거 아니예요?
백 : 준비된 멘트가 있어서인지 (최세용은)막힘이 없죠. 내 입장에선 필리핀 와서 이런 사람을 만났으니 기쁘고, 그래서 굉장히 친절하게 이야기를 했죠. 예의를 지키면서. 그 사람도 그렇게 해요. 말도 조곤조곤 잘 하고. 준비된 각본이 있는 것 같아요.
돌 : 그 사람이 썼던 가명같은 게 있나요?
백 : 나한테 자기는 XXX이라고 그랬어요.
최세용의 또다른 이름.
돌 : 최세용이 밝힌 가족관계, 그런 건 없었나요?
백 :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과거라든지 개인적인 사생활을 안 묻게 되더라구요, 본능적으로.
돌 : 그 사람은 다 물었는데?
백 : 그 사람은 나한테 물어봤지만 나는 똑같은 질문을 안 한 거죠. 나는 오히려 그 직업에 더 호기심이 생긴 거고. 글을 쓰신다면서요? 그럼 어디 어디 다녀보셨나요? 뭐 이런 걸 묻게 되죠.
최세용이 이렇게 얘기해요. 보통 관광객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간다. 그럼 난 고맙죠. 이런 사람 만나보고 싶었는데. 여행자들은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 하지 큰 길 다니면서 사진 찍고 단체관광객들 가는 데 가고 싶어 하지 않잖아요?
돌 : 그렇죠.
백 : 그런데 마침 그런 사람을 만난 거예요. 그러면서 그런 얘기를 조금 조금씩 해요. 태국을 가면 어떻고. 사람들이 사원을 많이 가는데 그런 데 말고 여기를 가시면 정말 태국을 볼 수 있다고.
태국, 본지가 최세용이 숨어 있는 장소로 추정하고 있는 곳 중 하나.
백 : 그런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으니까 결혼하셨나요? 라든가, 혹시 학교는 어디예요? 이런 질문이 안 나오는 거죠.
돌 : 일단 여행자로서 호기심 충족이 먼저니까.
백 : 그 사람에 대한 질문을 하기에도 벅차요. 이 사람이 결혼하고 애를 몇이나 낳았는지는 상관없고. 나(한테) 물어보면 나는 얘기를 죽 해줘야지 예의라고 생각을 하고. 하지만 나도 뻥친 거잖아요. 나도 도망자였으니까.
3. 납치단 리더 최세용의 ‘컨셉’
돌 : 최세용은 실제로 대면했을 때 느낌이 어때요?
백 : 그 사람이 컨셉을 굉장히 잘 잡았다고 생각해요.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쓴다고 보면, 그런 느낌이 매치가 되는 외형. 머리나 옷 스타일도 그렇게 젠틀하지 않고 약간 터프하면서 서민적으로 털털한 느낌.
머리스타일도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 같이 단정하지 않고, 옷도 티셔츠에 청바지 하나, 운동화 신고 왔어요. 거기에 사진기 하나 메고 다니면 딱 여행가다 싶어요. 컨셉을 정말 잘 잡은 거죠.
돌 : 공개수배 걸려있는 사진 보셨죠?
백 : 예
돌 : 만약에 그 사진을 보고 일반 사람이 최세용을 목격하면 알 수 있나요?
백 : 네. 사람 눈빛이 남아 있으니까. 그리고 얼굴 형태나 이목구비도 그대로니까. 그런데 (공개수배 사진처럼)저렇게 사람이 험악하다고 그래야하나, 그런 느낌은 아니예요.
돌 : 그 사진은 좀 험악하게 보이는 건가요?
백 : 수배 사진은 사람이 야박해 보이는 표정인데 그렇지 않아요.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그런 일(살인, 강도, 납치 등 그에게 걸려있는 수배)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 같아요. 그냥 동네 형.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것 같은 체구에 너무나 평범한 그냥 동네 아저씨. 그렇다고 손이 커, 주먹에 굳은살이 있어, 얼굴에 흉터가 있어, 그런 것도 아니예요.
돌 : 하긴 최세용은 다른 일당이랑 달리 문신도 없으니.
4. 납치 D-2 : 행동대장 김종석과 만나다.
돌 : 그럼 그날은 한 시간 동안 편의점에서 맥주 마신 게 끝인가요?
백 : 맥주 마시면서 내일 만나자고 하더라구요. 내일 점심 때 출발하겠다고. 그리고 헤어졌죠. 그리고 나한테 민박집에서 나오라고 하더라구요. 자기가 아는 인왕산호텔이라고 있다고.
납치단 막내 김원빈(뚱이)의 신문조서에 의하면 2010년 5월, ‘필리핀 마닐라의 인왕산 호텔에서 같은 한국인인 최세용과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니 반가워서 가까워 졌다’고 진술하고 있다.
김원빈은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고 항소 중이다.
백 : 인왕산호텔이 교통도 편하고 한국식당도 있으니까 거기로 옮기라고 해요. 그래서 내가 인왕산호텔은 싫다고 했죠. 난 수배자니까. 한국 사람들 가는 데는 은근히 싫잖아요. 그래서 그 주변에다 숙소를 옮길게요, 그랬죠. 그 다음날 숙소를 옮기려고 민박집에서 가방을 가지고 나왔어요.
돌 : 아침에?
백 : 네. 그리고 인왕산호텔 주변에 있는 필리핀 현지호텔에다 방을 잡았어요. 점심에 나가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아직 대사관에서 여권을 연장 못 했잖아요. 사실 그게 나한테 가장 중요한 일인데. 그래서 정말 미안한데 저녁에 출발하면 안되냐고 물어봤죠.
돌 : 반응은 어땠나요?
백 : 저녁에 출발하면 좀 그러니까 자기들이 좀 더 미룬다고. 너무 미안했죠. 그래서 대사관에 갔더니 그날은 무슨 일 때문에 페이지 연장이 안 된대요.
중국 심천에 살면서 홍콩 마카오를 왔다갔다 하니까 도장 찍는 페이지가 조금 부족했는데 그걸 연장하면 20페이지를 더 끼워줘요. 그러면 그 여권을 2013년 만기까지 쓸 수 있겠다 싶었죠.
만기가 되면 나는 더 연장을 못 해요. 정체가 드러나기 때문에. 그래서 그때가 되면 중국 사람 신분을 사서 아예 중국인으로 귀화하려고 생각했죠.
그가 중국인으로 귀화했다면 지금 내 앞에 없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백명주 씨가 2013년까지 버티지 못한 결정적 근거를 제공한 인물은 최세용이 된다.
계속 가보자.
백 : 결국 오늘 안되고 그 다음날도 출발이 늦어져 버리게 된 거죠.
돌 : 미안했겠네요.
백 : 엄청 미안하죠. 상식적으로 최세용은 ‘그러면 우리 일정에 차질이 생겨서 안 됩니다.’라고 해야 돼고 나는 그럴 줄 알았어요.
돌 : 그렇죠.
백 : 근데 또 미뤄주겠대요.
돌 : 또?
백 : 약간 서운한 척 하면서 미뤄주겠대요. 기억이 나요.
돌 : 그것도 스무스하게 넘어갔네요.
백 : 대신에 저녁에 잠깐 보재요. 난 미안하니까 ‘제가 술 한 잔 사야죠’하고 만났어요. 그리고 최세용이 인왕산호텔 근처로 왔어요.
어디 어디 골목 돌아가면 외국인들 있는 바가 있다고 해서 거기를 찾아갔어요. 가니까 최세용이 앉아 있더군요.
돌 : 그때가 몇 시쯤이었나요?
백 : 한 10시 됐어요. 외국인들만 있는 바에서 최세용이랑 둘이 맥주를 마시는데, 나는 하도 미안해서 많이 사주려고 했죠. 그런데 자기는 술을 잘 못한다고 자기가 아는 동생을 하나 부르겠대요.
내일 여행 같이 갈 앤데 필리핀 여자랑 결혼해서 여기 사는 교민이라고. 나는 또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거 아니예요? 좋죠.
그 '아는 동생'은 납치단 행동대장 김종석. 그와 결혼한 필리핀 여자의 이름은 마델. 그녀는 현재 필리핀 까비떼 지역에 거주 중이며 2012년 5월, 필리핀 마닐라 중심가에서 김종석이 현지교민을 납치할 때 유인책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현재까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불쌍한 사람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열 3위로 알려진 김성곤(필리핀 세부교도소 수감 중)과 그의 현지처는 납치범죄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김종석과 그의 배우자인 마델에게 돌리고 있다.
백 : 그리고 걔가 술을 좀 한 대요. 나랑 나이대도 비슷하니까 친구하면 되겠다고 하더군요. 최세용이랑 만나소 한 십오 분인가 있다가 그 사람이 왔어요.
5. 납치 D-1, 납치단 행동대장 김종석과 친구가 되다
백 : 김종석이 그때는 머리도 짧고 까무잡잡한 게, 티셔츠를 입고 있었어요.
돌 : 다른 피해자 말을 들어보면 잔근육 몸매라고.
백 : 그런 느낌이예요. 노가다 다니는 아저씨. 잔근육이 있고 굉장히 단단하게 보여요. 필리핀 교민이라고 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을 느낌.
돌 : 최세용이 미리 짜놓은 이미지랑 딱 맞네요.
백 : 지들끼리도 그렇게 보였나 봐요. 그래서 김종석이랑 나이 얘기 하니까 동갑이고. 내가 말 놓자고 그랬는데 한참 안 놓더라구요. 그래서 나는 먼저 놓고 그러다가 지가 술이 좀 들어가니까 말을 놨어요. 말을 놓고 나서 그때부터 신상을 물었죠.
고향은 어디냐? 부산. 너 결혼했냐? 했대. 누구랑 사니? 여자 하나 있대. 형제는? 없대. 부모님은? 어머니 혼자, 부산에 있대.
김종석, 당연하지만 그에게도 어머니가 있다. 2007년 안양 환전소 살인사건 이후에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백 : 그래서 ‘너 엄마한테 미안하겠다’라고 했죠. 왜냐면 내가 엄마한테 미안한 상태였으니까. 나도 수배 중이라 못 돌아가고 있으니까.
돌 : 아…
백 : 그래서 그런 것 때문에 걔랑 개인적으로 친해졌어요. 술이 많이 취했고. 그리고 한 잔 더 하러 가기로 했죠. 자기네가 아는 한국식당에 나를 데리고 갔어요.
종석이가 많이 취해서 거기 식당에 있는 아가씨한테 작업도 걸고 농담도 하더라구요. 식당에 있는 아가씨는 앙탈도 부리면서 애교도 부리고. 서로 친하더라고.
돌 : 식당 쪽이랑 좀 아는 사이였나 봐요?
백 : 지금 얘기하면서 생각난 게, 종석이가 카운터 보는 한국 아줌마한테, ‘아줌마 나 알아요? 우리 알아요?’ 이걸 두 번 이상 물어봤어요. 그걸 내가 왜 기억하냐면, 최세용이 나중에 그랬어요. 내가 그 다음날(한국 식당에서 술을 먹고 있는 현재로부터 하루 후)안 나올 줄 알았다고. 종석이가 술 먹으면서 말실수를 여러 번 해서.
돌 : 음.
백 : 종석이가 술이 들어가서 쓸데없는 말실수를 여러 번 하니까 내가 눈치채고 안 나올 줄 알았단 거예요. 괜히 안 물어봐도 되는 카운터 아줌마한테 우리들(최세용, 김종석)을 아냐고 확인하려고 하고. 그때 아줌마가 ‘왜 몰라요, 알아요’ 하면서 아는 체를 했어요.
돌 : 네.
백 : 돌이켜보면 최세용이(납치에 실패할까봐)굉장히 불안해 한거죠. 아줌마가 (자기들을)안다니까. 그리고 지금 생각났는데 최세용은 식당 입구 카운터를 등지고 앉아 있었어요.
돌 : 최세용은 항상 조심하는군요.
백 : 항상 등지고 앉고, 화장실에서 먼 쪽 구석에 앉고. 외국 카페에서 술 마실 때도 그랬고 한국식당에서도 그랬어요. 항상 출입구와 화장실에서 먼 곳, 그리고 등지고 앉고.
납치단 리더 최세용은 일당 중 가장 조심성이 많은 인물이다. 가장 목격자가 적은 인물이기도 하다.
돌 : 김종석은 별로 그런 거 안 따지고?
백 : 종석이는 술 한 잔 들어가면 애가 좀 허술해져요. 걔는 결국 잡혀요.
결국, 잡혀요.
돌 : 거기도 인왕산호텔에서 별로 안 멀겠네요?
백 : 걸어 다니는 거리예요. 인왕산호텔 자체가 한국사람들 있는 곳에 있으니까.
돌 : 그때 김종석이랑 나눈 얘기 중에 기억에 남는 게 또 뭐가 있을까요?
백 : 종석이가 자기 신세한탄을 많이 했어요. 최세용은 나하고 종석이가 이야기하는 걸 지켜보는 분위기였고. 내가 그때도 술을 좋아해서 계속 원샷해서 먹이고 그러니까, 종석이가 취한 거예요. 만날 필리핀에서 산 미구엘(필리핀 맥주)만 먹다가 갑자기 한국에서 덩치 이따만한 놈이 나타나서, 원샷! 친구여! 그러니까 얘는 나 맞추다가 취했죠.
백명주 씨는 운동부 출신으로 177cm에 당시 체중은 120kg에 육박했다.
돌 : 김종석이 (술이) 그렇게 세진 않네요?
백 : 세진 않은데 좋아하죠. 발동 걸리는 스타일. 종석이는 최세용한테 계속 잔소리 들으면서도 계속 나랑 마셨어요.
최세용은 그런 상황에서도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긴장을 풀지 않는 스타일이다.
돌 : 김종석이랑은 이미 말 놓은 상태고 최세용이랑은 말 안 놨어요?
백 : 그때는 이미 놨죠. 카페에 가서 종석이랑 나랑 말 놓을 즈음에 놔버렸어요.
돌 : 그때부터 세용이 형이 된거네요.
백 : ‘형도 말 놔요. 우리끼리 놓는데. 말 안 놓으면 나 형이랑 말 안 한다.’ 그랬으니까.
돌 : 그 와중에도 최세용은 별로 자기 얘기는 안 했고?
백 : 별로 안 했어요. 왜냐면 종석이가 합류하면서부터 할 이야기가 다양해지고 넓어졌잖아요? 그리고 자기 여행 간 얘기는 어제(편의점에서 맥주 마시면서)많이 들었고.
오히려 나는 종석이랑 얘기하는 게 재밌었죠. 교민이라니까. 타향에서 만난 사람에 동갑이니까 오히려 난 종석이랑 통했던 거 같아요. 최세용은 약간 나랑 과가 틀렸어요.
그런데 종석이가 식당에서 말실수를 계속하니까 최세용이 삐져서 먼저 갔고.
돌 : 최세용이 뭔가 기분 나빠서 갔다는 느낌?
백 : 음, 뭐라 뭐라 그러면서 종석이한테 한참 그랬어요. 종석이도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거 같고. 술이 들어갔으니까.
돌 : 음.
백 : 난 최세용한테 ‘형, 그냥 둬, 우리 내일 오후에 어차피 여행갈 건데. 안주도 이만큼 남았고’ 그러면서.
그래서 난 종석이한테 ‘우린 맥주 한 잔 더 하러 가자’하고 최세용한테는 ‘형은 가요, 안 먹을 거면.’ 이러고.
결국 최세용은 이차 끝날 때쯤, 먼저 갔죠. 그리고 나서 종석이가 자기가 잘 가는 술집이 있다면서 일본 가라오케를 가요.
돌 : 네.
백 : 일본 가라오케는 다 오픈돼있어요. 손님이 손님을 쳐다보고. 한 명 씩 나가서 노래를 하잖아요? 아가씨는 옆에 앉는데 한국 룸싸롱같이 손 집어넣고 놀지는 못하는 덴데 종석이는 거기서 그런 식으로 놀았죠.
돌 : 그런 장소가 아닌데?
백 : 그 오픈된 데서, 막 가슴에 손 넣으려고 하고 아가씨는 도망가고.
돌 : 아가씨는 정말 싫어하는 것 같고?
백 : 그러니까 얘가 술이 꽤 취한거죠.
돌 : 삼차에 오픈된 장소를 일부러 데려갈 정도면 그게(조심성이) 없네요.
백 : 얘가 얼마나 취했냐면, 얘도 본능적으로 조심하면서 사는 앤데, 거기 나가서 노래를 해요.
돌 : 한국사람이 많을 텐데?
백 : 아니, 거의 100% 일본애들. 그러고 보니 어떤 면에선 안전한 장소네.
돌 : 맞다, 피해자들이 김종석은 일본인 같은 느낌도 있다던데?
백 : 그냥 말 안 하고 있으면. 분위기가 그래요. 그땐 머리 짧고.
돌 : 섞여 있군요. 일본인으로도 볼 수 있고, 현지교민으로도 볼 수 있고, 게다가 약간 노가다 풍.
<왼쪽은 김종석의 공개수배 사진, 오른쪽은 필리핀 현지 교도소 수감 당시의 김종석>
백 : 노가다 풍에 옷 깨끗하게 입힌 그런 느낌? 왜 땅땅한 애들 있잖아요. 군살 없고, 까무잡잡한.
그렇게 그 날 많이 먹었어요. 종석이가 휘청거릴 정도로. 나와서 내가 ‘또 먹자!’ 그러니까 걔가 택시 타고 도망갔어요.
돌 : 오히려 이쪽에서 ‘더 먹자’ 그런 거예요?
백 : ‘야, 한 잔 더 하자.’ 그랬죠. 나는 외국에 와서 더 많은 걸 경험하고 싶은 자세인데 아직 술 들어갈 자리가 남아 있었던 거고. 그리고 그때 시간도 열두 시가 안 됐었어요.
돌 : 삼차까지 갔는데도?
백 : 한 일곱 시, 여덟 시 쯤에 만나서 맥주 한 잔씩 먹고, 한국식당 가서 소주 한 시간 정도 먹고, 일본 가라오케 가서 노래 한 곡씩 하면서 맥주 먹고. 열두시 안 됐죠. 밖에 나오니까 아직 차가 막히고 그랬으니까.
돌 : 음.
백 : ‘한 잔 더 하자’ 그러니까 안 된대요. 그리고 종석이는 택시타고 도망갔어요. 그래서 나는 터덜터덜 맥주 두어 캔 사가지고 숙소에 들어와서 티브이 보면서 마시다 잤죠.
백명주 씨는 그렇게 이국에서 새롭게 사귄 형(납치단 리더 최세용)과 친구(납치단 행동대장 김종석)와의 술자리를 가지고 잠에 들었다.
몇 시간 후에 그 형과 친구에게 납치될 거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6. 납치 D-0, 최세용, 김종석과 함께
백 : 다음날 점심 때 인왕산호텔 1층에서 밥을 먹었는데 그때부터는 전화가 은근히 자주 왔어요. 그때는 내가 벌써 이틀을 미룬 상태니까 그거에 대한 부담이 있어서 이 사람들이 나를 챙긴다고 생각을 했나 봐요.
그래서 오는 족족, 아이고 지금 씻었어. 점심 먹고 가, 걱정하지 마, 이런 식의 대화를 했죠. 오늘은 갑니다, 이거예요.
돌 : 전화한 건 최세용?
백 : 전화는 항상 최세용이 했어요. 내가 '형, 걱정하지 마, 오늘은 간다.' 그랬죠. 인왕산 호텔에서 백반을 시켜 먹으니까 최세용이 '거기 백반 말고 뭐, 잘하는데' 그런 얘기도 했어요.
돌 : 최세용이 빠삭할 거예요. 인왕산호텔은.
백 : 그래서 '형, 와라' 그러니까, '내가 지금 차를 몰고 가는데 방향이 그 반대방향이니까, 인왕산호텔에 나와 가지고 길 건너에 서 있어' 그러더라구요. 흰색 승합차가 앞에 갈 거라고. '형이 직접 운전해?'하니까 직접 한대요. 난 그래서 더 신이 났죠. 우리 끼리 가는 여행이니까.
돌 : 어떤 차였나요?
백 : 흰색, 다마스보다 약간 큰 느낌. 좁은 운전석, 조수석 있고, 뒷자리 일자로 된 거 쭉 있고, 그 뒤에 짐칸이 있었으니까. 절대 고급차는 아니고.
돌 : 네.
백 : 최세용이 운전을 하고 옆자리에 종석이가 앉았어요. 내가 종석이한테 '너 이새끼, 너 어제 도망갔지! 형 얘 어제 도망갔어'라고 농담하고 최세용은 '어, 얘기 들었어.' 그러고. 그리고 탔죠.
돌 : 오후 한 시 정도 됐겠네요?
백 : 한 시 정도 됐겠다, 아, 한 시나 한 시 좀 넘었을까. '형, 여기서 얼마나 가?' 하니까 피나투보 화산인가, 한 시간 넘게 간대요.
'형 계속 혼자 운전해야 되네, 아이고 나는 모르겠다'하고 뒤에 기대 누워서 가는데 최세용이 전화를 계속 하더라구요. 한국 사람이랑. 내가 '누구 데려가게?'라고 질문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전화를 해요.
예를 들면 '그래서 니가 몇 시에 출발할 수 있다는 건데?' 라든가, '여자친구가 와야지 니가 가네?' 이런 식의 대화를 하는 거예요.
돌 : 다 알 수 있게.
백 : 그러면서 나한테 어학연수 다니는 한국 앤데, 데려갈 거라고. 난, '좋지, 형.'이라고 말하고. 학생들 만나면 또 많이 물어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걔가 여자친구네 집에 있는데 여자애가 와야 열쇠를 주고 나온다는 거예요. 말이 되는 거죠. 가는 길이니까 태워서 가자고.
그래서 한 시간 가까이 갔어요. 마닐라 시내는 벗어났고 현지 사람들만 사는 동네 분위기. 서울로 치면 중심 벗어나서 구파발 연신내 수색으로 빠진 그런 기분.
7. 김종석의 느낌
돌 : 차 타고 가면서 김종석이랑 두런두런 얘기도 했을 거 아니예요? 어때요?
백 : 걔는 한 십 분만 얘기해보면 느껴요. 가방끈 짧구나.
돌 : 여자 좋아하고?
백 : 최세용 같은 경우엔 그런 판단을 못하겠는 게, 일단 여행 다니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스펙은 있지 않겠나, 어디라도 나왔겠지, 그런 느낌을 내가 먼저 받은 거죠. 그래서 그런지 마음속에서 무시하거나 이런 건 없었는데, 종석이 이놈은 허접했어요.
고등학교 중퇴한 정도, 그렇게 얘기하면 믿겠어. 중학교 다니다가 집 나와서 이랬다고 해도 그랬구나 싶을 정도의 억양과 말투. 종석이는, 그래서 오히려 더 편했어요. 장난치기도 쉽고.
당시엔 전혀 어려운 존재가 아니었던 거예요. 덩치도 좀만한 게 계속 장난치고 심술부리고 싶고. 뒤에서 헤드락 걸고 이랬으니까.
그가 '이새끼'라며 헤드락을 걸면서 장난친 남자는 2007년 안양환전소 살인사건의 용의자이자 수많은 피해자들을 가장 잔혹하게 대했기로 악명이 높은 납치단 행동대장, 김종석이다.
물론 당시의 상황에서 그와 김종석은 친구인 상황이다.
돌 : 김종석이 홍석동 씨 어머니 협박하는 녹취록 들었죠? 그럼 그거 되게 어색했겠네요?
백 : 거기서 걔가 굉장히 점잖을 떠는데 나는 그거 들으면서 개콘에서 경상도 애가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나는 친구가 된 상황에서 걔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돌 : 제가 만난 피해자들 중에 '김종석은 눈빛이 살아있다'고 말한 분도 있는데.
백 : 그냥 눈이 쫙 찢어져가지고, 악한 행동을 할 때 본능적인 악함이 묻어나오고 상대방이 그걸 느껴서 그렇지, 위협적인 건 아니었어요.
돌 : 평소에는?
백 : 네. 내가 묶여 있고 그 사람 총에 위협을 당하고 두들겨 맞고 그러면 그 사람이 무섭게 보이는 거고 나는 이미 친구같이 말트고 지내는 상황에서 그걸 못 느끼죠.
돌 : 인상이 더럽다는 느낌도 없고?
백 : 인상은 더럽죠. 전혀 깔끔한 애가 아니니까. 걔가 깔끔한 느낌 받으려면 성형시켜야 돼요. 어떻게 꾸며서 깔끔한 느낌을 받게할 수 있는 애가 아니예요.
8. 너, 납치된 거야.
백 : 그렇게 가서 필리핀 외곽에 조용한 마을로 가더라구요. 뭐 그런 줄 알았죠. 필리핀 여자친구네 집이라니까. 차가 어떤 집 앞에 서고 굉장히 인적이 드문 그런 마을이었는데, 여자친구가 아직 안 왔대요. 잠깐 들어와서 물이나 한 잔 해, 그러길래, 나는 차 안이 더 시원하니까 안나가고.
9월 달에 필리핀이 엄청 덥거든요. 그래서 차에서 내리지 않았어요. 그 집은 보나마나 에어컨도 없을 것 같고.
그렇게 안 들어가고 한 이십 분, 십오 분이나 지났나. 자꾸 들어오래요. 들어와서 얼음 물 한 잔 하자는 둥, 그러더니, 내 가방을 확 들고 들어 가버려요. 장난치는 것 같이.
돌 :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계속 차 안에서 누워 있으니까?
백 : 내가 차 안에 있으니까. 에어컨바람만 계속 쐬고 있으니까, 내 가방을 들고 들어가는 거예요.
돌 : 김종석이?
백 : 네. 그래서 '아, 이 새끼야' 그러고 내린 거죠. 그 철문을 열고 자동차 하나 주차할 정도 크기의 마당을 가로질러서 집으로 들어갔어요. 단층 집.
돌 : 겉에서 보기에는 허름한?
백 : 아니, 그냥 평범한 집이예요. 그리고 집에 들어갔죠. 들어가자 마자 뚱뚱한 애가 있는 거예요. 뚱이.
뚱이, 납치단 막내 김원빈이다. 현재 수원 교도소 수감중이다.
백 : 걔랑 인사를 했어요. 내가 '안녕하세요? 어유, 등치 좋으시네.'라고 말했죠. 뭐, 최세용, 김종석이랑 말 놓은 상황에서 보나마나 앤데, 내가 뭐 처음 뵙겠습니다, 이럴 정도는 아니고, 등치 좋으시네, 이 정도 장난은 칠 수 있으니까.
돌 : 그때 백명주 씨가 120kg쯤 나갈 때였는데, 본인과 비교해서 뚱이는 어땠나요?
백 : 나보다 더 뚱뚱하거나 나 정도? 느낌에 굉장히 컸어요. 최세용 옆에 서서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컸죠.
돌 : 제가 재판장에서 봤을 때는 (백명주 씨랑 체구가)비슷한 느낌이던데.
백 : 많이 빠진 거네요. 원래 감방 가면 쭉쭉 빠져요.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까.
돌 : 아. 그럼, 이제 집에 들어간 상황에서.
백 : 그래서 두리번 두리번 하는데, 집에 가구도 하나 없고, 벽에 허접한 그림 몇 개 걸려 있어요. 밀레의 이삭줍는 사람들, 칼라프린터로 뽑은 거 같은. 그런 게 액자도 없이 걸려있어요. 그래서 두리번두리번 거리는데, 뒤에서 최세용이 부르는 거예요.
'현우야!
'네?'
'너, 납치된 거야.'
그리고 김종석은 백명주씨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을 댔다.
9. 가혹하다
백명주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 후, 그의 어머니와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왜 니가 앞에서 그래야 하는데! 경찰이 어련히 알아서 잡으려고!'
납치단 일당 중 몇몇은 검거된 상황이지만 리더인 최세용과 행동대장 김종석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들은 원하는 사람의 신상정보를 쉬이 캐취할 수 있다. 한국에서 그들에게 정보를 넘기는 조직책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수년 간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납치를 하고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불과 몇 달 전까지 필리핀 중심가를 버젓이 돌아다니다 그 한복판에서 또 다시 납치행각을 였다. 현지에서 붙잡혔을 땐 경찰을 매수해 유유히 유치장을 나왔다.
그 장본인인 납치단 서열 3위 김성곤은 현재, 필리핀 세부 교도소에 수감 중이지만 언제 한국으로 이송될지 기약할 수 없다. 어쩌면 이 사건이 조용해 질 때쯤 보석으로 나와 다시 필리핀 중심가에서 목격될지 모른다.
납치단의 유인책 역할을 한 김종석의 아내 마델은 현재 아무런 제약 없이 필리핀 까비떼 지역에서 살고 있다. 그녀의 집에서 한국인 관광객의 것으로 추정되는 여행용 가방과 각기 다른 한국인 여성의 옷가지가 나왔음에도 수색영장은 발부되지 않는다.
그녀에게 직접 피해를 당한 모씨는 얼마 전,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필리핀으로 직접 와 재판장에서 증언하지 않으면 그녀의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았다. 재판이 열리기 불과 며칠 전에 걸려 온 전화다.
성공한 사업가에서 경제사범으로, 그리고 15년간 수배자 신분으로 국외에서 도망자 생활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백명주 씨. 그는 모든 일을 정리하기 위해 스스로 귀국을 택했고 서울구치소 바깥세상을 본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주고 받은 그의 메일 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를 제대로 하겠다고 호기를 부렸지만 걱정되는 건 다른 사람들과 같습니다.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건가요? 생각보다 힘이 듭니다.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믿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 나서기 껄끄러운, 아니 나서선 안 되는 상황이다. 다만 굉장히 화가 났다고 한다. 어떤 이들의, 그냥, 묻어버리려고 하는 태도에.
백명주 씨는 말한다.
자기가 나선다고 그들이 잡히진 않을 거라고. 다만 시들어가는 대중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유지하고 싶다고.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또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한 일에 작은 제동을 걸 수 있다면, 혹시라도 자신을 보고 미신고자들이 용기를 내 줄 수 있다면.
그는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 실명, 얼굴을 모두 공개했다. 본인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하지도 가명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돈 많고 권력있는 이의 관계자가 필리핀에서 사고를 당하면 몇 달되지 않아 사건이 해결된다. 용의자가 빠른 시일 안에 국내로 이송된다. 하지만 수 십 명의 피해자가 생겼고 아직 창창한 나이의 한 여성이 살해됐으며(안양 환전소 살인사건) 확인된 것만 최소 두 명(윤철완, 홍석동)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사건, 그리고 현지 교민들을 두려움에 떨게하는 이들의 사건은 왜 이리도 진척이 더딘 것일까.
증거가 확실한 용의자의 위치를 파악했음에도 수색영장이 나오지 않고 다잡은 범인조차 한국으로 이송할 수 없는 것은 왜일까.
그게 세상이치라고, 피해자들에게 설명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추신 : 다음 기사에서는 백명주 씨가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된 이후의 과정을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사진
윤까치
녹취
이동현(@Leetre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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