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맞아 "성탄처럼..." 이라는 제목으로 녹음하였습니다.

기쁨을 누리며, 기쁨을 전하는 복된 성탄 되시기를.

정기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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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처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나는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나는 누구처럼까지 될 수 있을까?

내게 있는 소중한 것 중에서 무엇 까지를 내어 줄 수 있을까? 나의 자녀를 무슨 일을 하는데 까지 내어 줄 수 있을까?

 

성탄을 맞아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성탄절은 우리에게 큰 기쁨의 절기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자가 오심을 기억하는 때입니다.

한 생명의 탄생은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없던 생명이 생기고, 불완전한 생명이 드디어 완전하여져서 세상에 나오는 것입니다. 어둠에 있다가 빛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은 ‘낮아지심’입니다. 이전에는 하늘에 계시며, 영으로 자유로우셨고,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누리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탄생은 창조자에서 피조물로 낮아짐이요, 육체를 입으심으로 제한 속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더구나 구원의 사명, 고난의 길을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자식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살린다는 의미에서 보람 있는 생이시지만, 불길 속에서 견뎌야 할 뜨거움과 연기를 감수하시고 오신 것이 성탄입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도 아픔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기의 아들을 떼어서 세상에 ‘내어 주심’이 성탄입니다. 예수님께서 생애동안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새벽 미명에 기도하심은 기도의 모범이 되십니다. 아버지와의 교통을 사모하였기 때문이요, 육체를 입고 오심으로 그 교통이 자유롭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식을 유학 보내도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함께 있던 시절에 비해 그리움도 크고 교통의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하던 컴퓨터도 배워서 메신저로 통화하고, 인터넷 전화를 가설하고 해서 그 소원함을 극복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겠습니다.

유학을 보내는 일은 자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떨어지는 아픔을 감수하는 것이라면, 예수님을 내어 주심은 고난 받기 위함이요, 죽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고 살리기 위해 가장 소중한 당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심이 성탄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아픔, 그리고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뻐하고 축하하되 그 핵심을 지니고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지만, 우리의 본으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낮아지심으로 우리가 높아지는 삶을 추구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낮아지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여 소중한 것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신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위하여 우리의 소중한 것을 내어 주며 살라는 것입니다.

최근 신문에 소설가 박완서 씨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조차도, 자식이 장차 예수님을 닮기를 원치 않습니다. 얻어맞는 아이가 될까봐 양보보다는 쟁취를 가르치고, 박해 받는 이들의 편에 설까봐 남을 박해하는 걸 용기라고 말해주고, 옳은 일을 위해 고뇌하게 될까봐 이익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돌진하기를 응원합니다.”

천주교인인 그분의 글이 남 이야기 같지만 않습니다. 예수님을 본으로 삼기보다 예수님을 밟고 서려고 합니다. 그분을 통해 유익은 얻되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성탄의 계절만큼이라도 낮은 곳으로 찾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애가 그러해야 하지만, 특별히 이때에 그런 삶을 시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삶을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나는 누구처럼까지 될 수 있을까?’ ‘내게 있는 소중한 것 중에서 무엇 까지를 내어 줄 수 있을까? 나의 자녀를 무슨 일을 하는데 까지 내어 줄 수 있을까?’

예수님은 낮아짐과 내어줌의 모델이기도 하지만, 그런 삶을 살 때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모델이기도 합니다. 낮아지셨으나 진정으로 높아지셨고, 죽으셨으나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소망삼아 오늘 기꺼이 성탄의 정신을 실천해 보시기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