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학살인가?
동물을 터트려 죽인다는 진행 자체가 징그럽고 혐오스럽다.... 그것도 3마리를 정조준해서 일점사 하는 방식에서는 살생기법에서의 오만함 마져도 느껴진다.
연쇄적 살생이나, 폭탄으로 대량학살을 할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구조 자체가 너무나 잔인하고, 폭발하는 짐승들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에서는 죄책감마져도 느껴진다.
폭발시 발생하는 별모양의 시체에선 생물학적인 기초마져도 무너뜨리고 군중들의 죄책감과 이성을 마비시킨다.
49마리의 짐승들의 머리를 손가락의 까닥거림 만으로도 그들의 자연에서의 삶을 벗어난 운명을 결정짓고, 끊임없이 쌓여가는 새로운 짐승들의 연속에서..나는 역겨움에 몸부림쳤다.
더 많은 동물학살을 위해서 휴대폰에 저장된 친구들을 끌어들이고 성과경쟁을 부추기는 방식 또한 너무나 잔혹하다.
언제나 1등이길 강요하는 강박속에서, 사람들은 긴장감속에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따위는 집어치우고, 그저 짐승들의 머리를 폭발시킬 뿐이다.
사용자가 학살을 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학살될 동물의 위치까지 알려주는 것에서는, 머뭇거리지 말고 학살하라는 듯한 비민주적인 강요마져도 느껴진다.
퍼즐게임을 표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것은 정상적인 형태의 퍼즐이란 장르의 범주를 벗어나 있는 것이다.
매일 밤마다 원치 않는 카톡 스팸-하트의 소음을 듣는것. 그것은 또다른 수 없이 많은 짐승들의 희생을 알려오는 죽음의 신호.
모두 동일한 표정을 짓고있는 아무것도 모르는 짐승들에게, 그저 인간들이 행하는 것은 그들 세마리를 짝지어 죽여버리는 것이다.
지극히 반기독교적인 사상으로, 야훼께서는 두마리를 짝지어 홍수로부터 구원을 주셨건만, 그들은 3마리를 짝지어 멸한다.
명백한 신성모독이다.
'라스트팡'이 울리는 마지막 폭발음에서는, 게임의 시간이 끝나 목숨부지만으로도 안심하고 있던 짐승들의 뒤통수를 치는, 신의원칙 따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마치, 배트맨에 나오는 악당 '조커'같은 극악무도함이다.
심지어는 다 자라지 않은 닭의 새끼인 병아리를 폭파시키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중세 암흑기의 그런 공포를 느꼈다.
쥐와 고양이를 한곳에 몰아넣고 대량학살을 진행하는 방식에선, 이미 자연의 먹이사슬구조 따윈 짐승들의 뇌리속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그저 비좁은 공간에 머리를 들이밀고, 저항 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리며, 그저 자신의 동족이 근처에 있지 않기만을 바랄 것이다.
그들의 죽음에는 과연 어떠한 정당성이 남아있는가.
고기를 얻기 위함도 아니다. 심지어는 폭발시킨다는 것에서 폭력성은 극대화된다.
네마리 이상을 한번에 터트릴 경우, 한마리가 살아남기도 하는데, 그 경우에도 생존의 기회 따윈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점수를 위해서라면, 또 다시 가혹한 죽음의 손가락질만이 기다릴 뿐이다.
게임의 순위대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수여한다. 과연 동물의 학살이 올림픽정신에 부합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분들도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이나, 내가 아는 쿠베르탱은 그런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게임이 끝나고 겨우겨우 살아남은 운 좋은 짐승들의 환희에 찬 미소.
과연 무엇을 위한 학살이었나. 그것이 가짜 짐승이라 하더라도, 유쾌한 멜로디 속에서 그저 나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도형이나 숫자, 음식물을 사용했더라면 어땠을까?
애니팡이란 무엇인가. 애니멀을 pang하고 터트린다는 뜻인가. 너무나 두렵다...
[출처] 무엇을 위한 학살인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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