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란 나라가
예의가 없지 않나요?
예의라고 해봐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방적인 강압예의 밖에 없는 듯 한데요.
필고에다가 논리적인 글 싸질러놓으면 되돌아오는건 논리적인 반박이 아닌 그저 이성이 먼저 작용해 깎아내릴려고 안달인 댓글들
사실, 대다수의 손 윗 사람들은 아랫 사람에 대해서 예의를 지키는 일은 별로 없지요.
사실 그런걸 예의라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만 못한게 바로 울나라의 예의 풍습이지요.
뭐, 선생의 그림자는 밟지도 말라는 말이 관용어로 쓰일 정도이지만, 사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오늘도 어제도 얻어 맞는게 부지기수 입니다.
요즘 교권이 무너지니 뭐니 해서 학생들이 안맞는다해도 그 또한 예의를 지킨다고는 얘기할 수 없는거죠.
이게 예의는 아닌 것이죠.
저도 살면서 타인과 싸운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모든 싸움에는 다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유가 있기 마련인 것이지요.
정확히 말 하자면,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것 이겠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전투력의 차이일 것 입니다.
저는, 최근 7년간 누군가에게 맞아 본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피지컬은 뛰어나고, 키도 183센티에 달하기 때문에, 누구도 저를 쉽게 범 할 수 없다는 견해 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저에게 시비를 걸어 온다면, 저의 톨레랑스를 시험받는 자리가 될 것 입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싸운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불명예만 남는 싸움에 불과한 것 입니다.
저도 중학교때에 한번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냥 엉엉 울면서, 그렇게 홀로 일어섰을 뿐이죠. 그곳에서 어느 선생이나 어느 학우들도 저에게 다가와서 계란하나 건네주는 사람이 없었죠.
지금, 싸움을 한 두 파이터 분들의 마음이 어떠할지는 저도 조금이나마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사람사는 것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게 좋은것이라고, 좋게 좋게 살고 하는것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란 것 입니다.
굳이 부딪힐 필요가 없다면, 부딪힐 이유 따윈 없는 것 입니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영어단어 한 단어를 더 외우는 편이 나을 것 입니다.
필리핀에 사시면서 영어 못하시는 한국인들 반성좀 하세요. 외국왔으면 예의좀 지키시지.
하지만, 상대방이 결코 피해 갈 수 없도록 배수의 진을 치고, 압박을 해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종국에는 피 할 수 없는 경우가 인생을 살면서 서너차례 정도는 일어나기 마련 입니다.
단지, 주변에 동영상을 찍는 사람이 있어서 운이 없었을 뿐이죠.
제가 보기에는 그 동영상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 사람이 가장 잘못이 크다고 생각 합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누군가를 두들겨 패고, 또는 누군가들은 싸우고 있거든요.
단지, 안찍히고, 인터넷에 안떳을 뿐 입니다.
사람이 일평생을 살면서 잘못한번 안하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한번쯤 병맛같은 경험을 하게 되거나, 저지르는 일이 꼭 있을 겁니다.
우리가 흔하게 길바닥에서 살펴 볼 수 있는 담배꽁초들 조차도 마찬가지의 것이죠.
만일 누군가가 담배를 피고 길바닥에 담배꽁초를 버렸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게 우연히 TV에 찍혀서 전 국민에게 보여졌다고 합시다.
결국에 그 사람은 꽁초남이나 꽁초녀 정도로 불리우면서, 전 국민적인 냄비의 두드림을 당할 것이죠.
물론 본질적으로, 나이차가 이정도 나는 격투는 일찌기 접 할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무武를 추구하는 무인들에게 있어서는 나이란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 입니다.
한 소녀가 '한국 싫어!' 하면서 외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반만년의 한반도의 역사가 플래시가 터지듯이 흘러가는게 느껴지더군요.
그 소녀로 하여금 한국이 싫도록 만든 장본인은 과연 누구 입니까.
그 소녀의 부모 탓입니까, 그 소녀의 탓 입니까, 할머니의 탓 입니까. 옆집노인 탓 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불쾌한 소식에 열광할 필요성은 없는 것 입니다.
결국에는 이런 씁쓸한 사건 조차도, 하나의 amusing으로 그 자체가. 이미 예의를 벗어난 것 이지요.
동방예의지국이란 허상은 결국에는 외적인 피지컬이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방통행에 불과한 한계성을 드러낸 것 입니다.
사실, 저와 같은 피지컬을 지닌 사람에게 깝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게 과연 동방예의지국 입니까?
이건 무협소설에서나 나오는 근본주의 입니다.
더군다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만큼의 '노블리스 오믈라이스'를 모른다는 것 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공짜로 지하철을 탔으면 그만한 의무를 실천해야 하는 것 이지요. 그건 바로 어른으로서의 책임이란 것 입니다.
영화 <단테스 피크>와 같은 것에서 절실히 드러나는 그 나이의 책임이란 것이죠.
저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절실히 저의 사회적인 의무를 실천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 입니다.
저의 학자적인 책임감이나, 한사람의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이 그러한 일련인 것이죠.
사실, 나이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일반론적이고, 각각의 사람들에 대해서 정확한 계측이 없는, 어찌보면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 이기도 합니다.
마치 그건, 이 세상의 모든 땅값을 모두 3.3제곱미터당 100만원으로 모두 일괄적으로 적용시켜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것이죠.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것 이지만, 나이를 정말로 헛 먹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나이를 헛 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 다니면, 20살이라고 하고 다닙니다.
물론 얼굴도 동안이기 때문에, 간혹가다가 담배를 사려고 하면은, ID카드를 제시하라고 하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만.
저는 결코 저의 ID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개인정보는 제가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사실, 담배를 파는 사람도 ID를 보여줘야 공평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이를 헛 먹었다는 것은 나이 탓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이 부끄러운 것도 아닌 것이죠.
하지만 나이 구실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불편한 것 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나이를 너무 많이 먹은 것 마냥 행동하는 사람도 존재 합니다.
보통은 그런걸 중2병이라고 하기도 하고, 애늙은이 정도라고 하는것도 같네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런 애들을 어른대접을 해주느냐. 그것도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우리의 관념은 오로지 숫자라는 것에만 집착을 하기 때문입니다. 짬밥이란걸 너무나 좋아하거든요.
저는 여자를 볼 때에도 숫자라는 나이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사실, 숫자 따위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생물학적인 나이나, 정신적인 연령 정도인 것이지요.
아무래도 충격적이기도 한 것인, 아주 어린 학생과, 아주 나이 많은 어른이 싸운다는 것 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황당한 일 이지만, 사실 모든 사건에서는 그만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 이지요.
저는 그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 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지켜 본 것도아니고.
그들의 감정 자체를 알 수 없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나이라는 것은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대간의 격차를 뛰어넘은 파이트가 성사 될 수 있었다고 사료됩니다.
전쟁을 겪은 세대와, 21세기를 살아가는 세대의 충돌이란 것은 극히 드문 일이죠.
물론 정치적으로는 모든 갈등이 확대되는것이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일반론적인 한국인의 예의라는 측면에서는 결국에는 그 어린학생이
욕을 먹는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기득세대들의 논리인 것 입니다.
사실, 어린애들은 힘이 없고, 그리고 논리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그 중간세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야.
그저 저는 방관자일 뿐 입니다. 누군가를 특별히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차라리 그럴바에는 거울이나 한번 더 보는것이 더 기분적 측면에서 나을 것이죠.
하지만 여러분들은 이것 하나만은 알아주셔야 합니다. 사실 인생이란것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저에게 시비를 걸어온다거나, 혹은 저의 톨레랑스가 폭발을하는 순간에는 저와같이 절처한 이성체인 사람 조차도 결국에는
사건에 휘말릴 수 밖에 없는 한 사람의 고독한 군중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활동을 할 때에는 이성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평소에 지하철을 즐겨타는 서울시민인 저로서는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만은, 이 사건을 보고서 즐기려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싸웠던 그 두 사람들인 것이죠.
이건 예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터넷이란 전국민적인 도구가, 결국에는 예의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구성원들 누군가에게나 일어날 수 있을법한 일에 대해서 엄격한 판단을 내리는 일에 불과한 것이죠.
게다가 대중들은 철저히 훈련받은 이성체들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는 것 입니다.
사실, 남에 일에 깊게 관여해서 좋을 일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가지는 것이기에 저로서는 당연한 논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UN조차도 저의 논평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제기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어찌되었든, 이런 일과 비슷한 일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명예를 지키실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절의 실천은 결국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한 행위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죠.
때문에 울 나라의 예절은 그저 빵점이란 견해 입니다. 명예를 지킬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으니까요.
저는 지금 어느 한 여성을 짝사랑하는 중 입니다만, 저는 짝사랑 조차도 명예로운 짝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그것이 바로 짝사랑에서의 예절인 것이죠.
그게 바로 제가 가진 royal-manner입니다.
저는 사실 royal-family 이거든요.
사실, 울나라의 예절이 개판오분전이 된것은 누구의 탓 일까요? 혹은 원래 개판육분전이었던 것일까요?
김정은이 핵날린다고 설쳐서라고 말할수있나요?
아무래도 그것은 공교육의 탓 이거나, 사회구성원들의 탓 이겠죠.
어찌되었든, 한국에 담긴 그 광경 자체는 한국의 씁쓸한 live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와같은 seoulite는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껴 말해도, dynamic korea의 과대발전주의 탓 이겠죠. 물론 내 탓은 아니라는 견해 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금치산자도 아닙니다.
저는 단순히 존나 잘생기고 피지컬 쩔고 키 183에 아이큐 148인 찌질한 식자에 불과하니까요.
만일 이게 내 탓이라고 한다면, 나는 분노 할 수 밖에 없습니다.
AI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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