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통화 대학살에도 당당히 버틴 필리핀 페소화

 
 
 
지난달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출구전략 발언으로 신흥국 통화는 일제히 직격탄을 맞았다. 통화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며 신흥국 금융시장을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이에대해 "신흥국 통화에 대학살이 일어나고 있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번 버냉키 쓰나미에도 당당히 버틴 신흥국 통화가 있다. 바로 필리핀의 페소화다.
 
필리핀 페소화는 지난 달 2.5% 하락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버냉키 발언이후 신흥국 금융시장의 패닉 여파에 잠시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곧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신흥국 통화 대학살 중에서도 필리핀이 속해있는 동남아시아 경제권은 그 피해가 유달리 컸다. 대부분 국가에서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를 염두에 둔 대규모 외국 자본이 이탈도 일어났다.
 
이때문에 지난 2분기 인도의 루피화의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는 8.6나% 추락했다. 이는 사상최저 수준이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도 버냉키 의장 발언이 나온 지난 22일 하루 4%나 하락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달러대비 통화가치가 2009년 9월이후 가장 낮은 상태다. 
 
투자은행 BNP파리바는 페소화의 가치 하락이 (미국의 출구전략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펀더멘틀의 문제가 아니라 일시적인 쇼크로 인한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연히 필리핀 페소화의 선방 비결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는 필리핀 경제의 특성을 들여다봐야 답이 나온다. 필리핀 경제는 인근 국가와 다르게 상품 수출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있다. 필리핀 경상수지 흑자의 버팀목은 바로 OFW(Overseas Filipino Workers)라고 불리는 해외 근로자들의 송금이다. 현재 OFW는 필리핀 전체인구의 10%가 넘는 1000만명 수준인 것으로 추산된다. 2010년 기준으로 이들의 송금액은 188억 달러(21조3474억원 )에 달해 국내 총생산(GDP)의 14%를 차지할 정도였다.
 
외교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과의 교역량도 인근 국가보다 훨씬 적다. 당연히 중국의 자금시장 경색의 파장에서도 한발 떨어져 있다.
 
필리핀은 최근 OFW의 해외송금을 바탕으로 내수 중심의 경제구조로 체질을 바꾸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나 기업의 외채 의존도도 낮다. 그만큼 외풍에 덜 흔들리는 구조다.
 
이를 바탕으로 필리핀은 올 1분기에 7.8% 성장을 기록했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5월 필리핀의 국가 신용등급을 종전 'BB+'에서 'BBB-'로 한단계 상향 조정했다고 발표했다. 신용등급 전망은 '안정적'으로 제시했다.
 
싱가포르 은행 DBS는 최근 필리핀을 소비주도 경제(국가)라고 규정한 뒤 향후 8년간 주변 20개 동남아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성장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