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날 20여일만에 다시 마닐라 뱅기에 몸을 실었다
아침뱅기라 피곤한 상태이고 어제저녁 현대 사장님과 해외영업부 지원들하고 술을먹은게
남아있어 기내에서는 잠만 자려고 ,공항 라운지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언제나 처럼 출발10분전에 탑승해서 바로 잠이들었다
두어시간잤는지 더 이상 잠이 오지않아 이번에 필리핀에가면 좀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일해보자 다짐하면서 헤리를 만나면 무슨 얘기를 먼저 할까? 고민해본다
헬리는 내가 15년전에 필리핀에서 처음 체용한 한국 직원이다
그후 10년을 같이 형제처럼 일했지만 나중에 독립해서 우리사업에 가장 라이벌회사며
우리 다음으로 필리핀에서 많이파는 경쟁업체 사장이다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화해하고 또 협력도 해가며
우리들의 최대 고객인 화교를을 견제하고있는관계다
앙금도 전에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협력하고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함과 약간의 앙금 ,
자신만의 정당성으로 자위하며 버티고있다.
필리핀은 신의 축복을 받은나라라, 교민사회에서 어떠한 짓을 했던간에
자신만의 자위적인 정당성을 신에게부여받아 살고있는게 교민사회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헬리는 조금 다르다
필리핀생활이 힘들때 의지하며 견딘기억이 많고 나보다 5살위라
지금도 그때의 잔상이 남아있어 자주 만나지만 언제나 만나때마다 기분이 좋다
"선생님! 식사 안하셨는데 지금이라도 갔다드릴까요?" 스튜디어스가 옆에와 갑자기 묻는다
"저가 마늘빵을 좋아해요  마늘빵 좀 많이하고 셀러드와 과일만주세요"
"커피는요?"물으며 상냥하게묻는다
한국여자의 웃는모습은 외국생활을 많이한 나에게는 매력적이다
"나중에 주시고 매인요리는별로 생각이 없어 괜찮습니다"
내가 식사할동안 쳐진 커텐 구멍사이로 나에게 커피를 갔다줄 타아밍을 확인하는 모습이
국적기를 탈때마다 느끼지만 부담스러우면서 친절함에 놀라곤한다
가끔미국에서 오는 필리핀사람이 우리 승무원의 친절함을 이용해 여승무원에게
무레하게 대할때면 화가 날때가 있다
다른 외국 항공기에서는 온순한 필리핀사람도 우리 국적기만 타면 요구 사항이 많아진다.
커피를 마시며 기내에서 내가 살아온 필리핀의17년을 생각해본다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 남들에게 본의아니게 상처준일,
아픈 기억들이 즐거운던 기억보다 선수쳐서 먼저 나에게온다
랜딩소리들으며 17년전으로 돌아가본다.

아무것도 없었다
IMF는 내가 가진 모든것과 이번만 버티면 됀다하면서 어머니의 일수를 놓으시는돈과 노후자금,
마지막 적금과 친척에게 빌린돈등이, 어렵게 마련한 우리 아파트에 부쳐진 빨간 딱지처럼
우리 가족은 황폐해졌다.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할수없었다
1998년에는 할수있는게 없었다
나의 고통보다도 나름 잘살아가다가 견딜수없는 사항까지 떨어진 아내의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고통받고,
아직 돌이 안된 둘째와 3살인 첫째는 매일 무엇이 못 마땅한지 운다
대 기업에서 나와 비젼을 가지고 시작한 에칭유리사업이
우방 청구 화성등 경상도 대규모 건설회사에 공급하며 어린 나이에 맛보았던
돈의 단맛도 2년이 넘어가면서 흔들리더니
마침네 작년에 imf 라는 이상한 단어가 들리더니
내 모든것을 가지고갔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나보다는 집 사람을위해 좀더 가능성 있는곳으로...

빨간딱지 에 진눌려 있는 우리를위해서 살고있던 대구에서 가까운 질량으로  월세집을 하나 얻어
도망치듯이 몰래 이사를 했다
이사는 했지만 상황이 달라질 여력이없었다
우린 한성유리의 재 하청으로 아파트 에칭유리만 하다보니 한성유리의부도로
어음만 25억이 남아있었지 받을수있는 방법은 보이지않았다
세금을 일년정도 못 내면서 타던 2년된 뉴그랜저와 결혼할때 장모님에게 받은 다이야반지등
살림살이를 팔아 만든돈 700만원을 가지고 필리핀 티켓구입비를 제외한438만원을 가지고
가족이 1998년에 마닐라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