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새옹지마
한국은 부는 얻었지만 기존의 사람 사는 맛을 잃었구요.
필리핀은 가난하여 불편하긴 하지만 아직 사람이 사는 맛이 남아 있는듯 싶습니다.
필리핀도 잘살게 되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면 한국처럼 될까도 생각을 해봅니다만 그거야 그때 생각해볼 문제이구요.
많은 한국인들이 과연 사람이 살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필리핀에서 떠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여러가지 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그예전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정서에 대한 향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입니다.
예전 저희 동네에 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이 한사람 있었습니다.
저보다는 3년 선배인데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그 아이를 낳았고 세컨드가 그아버지를 떠나면서 아이도 아버지에게 놔두고 떠나 갔습니다.
본처가 어쩔수 없어 아이를 맏기는 했지만 정을 친자식 처럼 주지는 못했을 거라고 봅니다.
당시에 저도 어렸고 참 힘들게 크는 형이구나만 느꼈을 뿐입니다.
그집에 여러 형제가 있었고 막걸리며 기타 잡화를 파는 가게를 운영하였고 약초며 뱀등도 수집을 하고는 하여 동네에서는 꽤 부유하게 생활하던 집이 었었지요.
본처의 자식들은 오냐오냐 키웠지만 나중에 다들 문제가 있게 되었고 부모를 모시지 않았지만 구박 받고 자라던 데려온 아들이 부모를 모시더군요.
지금 한국에서 아이들 키우느라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이 등이 휠정도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키운 아이들중 부모를 모실 자식들이 얼마나 될까요?
모두 자신들이 잘나서 큰줄 알테고.
대학교 간것은 자기가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겠고
직장 잘 잡았다면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 이라고 볼테지요.
제대로 뒷바라지 못해주면 원망이나 듣게 되겠지요.
본인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코피노 아이를 둔 아버지들
혼외자식의 존재 때문에 속은 썩어 들어 가겠지요.
남의 눈치 보이고 가족들에게 고개도 들지 못하겠고
도움주지 못하는 코피노 아이에게도 죄지은 심정으로 살아 가겠지요.
피할수 없으면 받아 들여야 합니다.
태어난 아이 다시 돌릴수도 없고
이곳에서 자라고 있는 당신의 아이들에게 필요한것은 큰것이 아닙니다.
일년 혹은 몇년에 한번씩이라도 방문해서 얼굴 익혀 두세요.
생일때 한번씩이라도 생일 선물 보내 주시구요.
마눌님 눈치 채지 못하게 아주 조금만 관심의 표시만 해도 됩니다.
그렇게라도 해놓으면 한국에서 등골빠지게 키운 자식들은 나중에 당신을 외면해도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가르치지도 못한 이곳의 못난 자식들은 당신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필리핀인들의 정서 입니다.
인간적인 도리를 외면하자 들어 오는게 소송 이구요.
입장 반대로 생각해서 내가 코피노 엄마의 입장이라고 해도 알면서도 연락을 끊은 사람이라면 괘씸 해서라도 소송을 하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피한다고 해서 피할수 있는것도 아니고 코피노 아버지들은 버려진 아이들을 이제부터라도 챙기시기 바랍니다.
사정 이야기 하고 생활비는 보내주지 못하지만 아이의 교육비는 챙기겠다고 약속 하시고 아이가 어리면 교육 보험이라도 들어 주시던가 하면 되겠지요.
일년에 한번 아이 생일 기억해 주시고 선물이라도 하나 보내주면 한국에서 키운 자식보다도 더 자식노릇 잘할텐데 말입니다.
오늘 한 코피노 아이가 다녀 갔습니다.
팡가시난의 울다네타에서 아버지에게 연락이 안된다고 도움을 요청해서 혹시나 도울수 있을까 해서 오라고 했더니 원하는게 아버지와의 통화 였습니다.
이런 전화도 한국의 가족에게 부담이 될까봐 연결 시키지 않습니다만.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의 아버지와 통화를 하였다고 합니다.
아바지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데 병원에 입원하면서 부터 통화가 안된다네요.
어떻게 알은 병원으로 국제전화라도 하면 영어를 하는 분이 없어 통확를 할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중풍을 맞아 입원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핸드폰도 반납을 한 상태 였구요.
제 070 전화로 몇사람을 거치고 나서 아버지와 통화가 되었습니다.
전화 통화를 눈물이 쉴새 없이 흐르는것을 보니 어지간히나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걱정이 됐는가 봅니다.
인터넷 전화니 국제전화에 대한 부담 가지지 말고 한두시간 통화해도 괜찮다고 하였는데 오래 전화하지는 못하네요.
아버지의 가족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고 아버지가 몇번 방문하여 놀아 주기도 했는가 봅니다.
그게 다인데 딸에게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 인것이지요.
아버지가 가까이 있다면 아마 옆에서 자리를 지키는것은 이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아이는 지금 열일곱 살이구요.
대학을 다니고 있는 중이네요.
어머니는 두바이에 일을 하여 딸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 있구요.
혹시 팡가시난의 울다네타 근방에 사시는 한국분중 인터넷 전화를 가지고 계신분이 계시다면 이아이가 일주일에 한번씩 한국의 아버지와 통화를 할수 있을까요?
저희 집에서 할수 있지만 울다네타에서 마닐라까지 전화하러 온다는게 그렇네요.
AI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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