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문화강좌 ''문화차이'란 무엇인가'에 이어 두번째로 ''보이지 않는 문화차이'는 어떻게 인식이 가능한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들을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학술적인 용어와 다소 긴 내용으로 인해 읽으시는데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문화강좌(2) : '보이지 않는 문화차이'는 어떻게 인식이 가능한가?

 

  독일인과 함께 일하는 한국인에게 어떤 문화차이를 느끼느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독일인은 Rule을 중시한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동일한 질문을 독일인에게 물으면 '한국인은 Title을 중시한다'라고 대답한다. 만일 인터뷰하는 사람이 '정말 그게 문화차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저하는 듯 '글쎄'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독일사람이라고 모두 Rule을 중시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인들 중에도 Rule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사람에게만 Title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독일사람들도 알고 보면 Title을 중시한다.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꼭 자기 이름 앞에 박사 Title을 붙여서 사용하지 않는가. 오히려 한국사람들은 편지 주소를 쓸 때 '님'이라고 존칭은 사용하지만 박사라는 Title을 사용하지 않는다.

  문화차이라고 하면 밥이나 빵처럼 확실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앞서 소개한 독일인의 또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은 양 국가에 공존하는 것으로 그 구분이 애매모호하다.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문화 II가 정반대의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인데, 양국의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당사자들은 갈등은 느끼지만 정말 자신들이 문화차이라고 느끼는 것이 진짜 문화차이인지 확신을 못한다. 나아가서는 '문화차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조차 의구심을 가진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 방송, 책, 여행을 통해서 다른 문화의 수용이 그 어느 때 보다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또한 세계화로 인해서 문화차이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당에 문화차이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문화차이는 없어져가고 있는 것일까?

  '독일인은 Rule을 중시한다'또는 '한국인은 Title을 중시한다'는 언뜻 보기에는 사고방식 또는 가치관을 즉 보이지 않는 문화 II의 차이를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은 독일인과 한국인의 관행이다. 관행이라 함은 개별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양식을 말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관행은 누구나 다 지키는 것은 아니다. 또 관행은 시대에 맞지 않으면 변화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전통적인 혼례양식이 서구식 혼례양식으로 바뀌는 것은 즉 관행으로서의 문화적인 변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화를 문화 I 또는 관행이 바뀌면 문화 II 즉 사고방식 또는 가치관까지 함께 변화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단 적인 예가 외국인 중에는 한국인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그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까지 서구화된 것으로 보고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에서 나타나는 갈등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보이는 관행의 자체라기 보기 보이지 않는 가치관의 차이에 기인한다. 즉 세계화로 인해 문화 I의 차이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게 대세라 할지라도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갈등의 원인이 문화 II의 차이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서도 분명해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문화 I의 차이는 쉽게 확인하지만, 문화 II의 차이는 여전히 못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화 I과 문화 II가 전혀 상반된 성격의 것이 아니라면 왜 사람들은 문화 I 속에서 문화 II를 못 보는 것일까?

  문제는 서로 동일한 관행의 현상을 보인다고 해도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가치관 문화 II는 전혀 상반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Rule과 Title을 중시하는 태도는 독일과 한국에서 다 관찰할 수 있지만, 독일인들이 Rule을 지키는 것에 가치부여를 하는 이유와 한국인들이 부여하는 이유가 전혀 동일시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Rule을 지키는 것은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방법으로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지만, 한국인들은 Rule을 지키면 사람이 쫀쫀해서 또는 융통성이 없어서 그렇다고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세월호와 같은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즉 동일현상을 두고 한국인과 독일인이 정반대의 해석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서로 '동상이몽'을 하기 때문이다. 바로 서로 자신의 해석이 옳고, 상대방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게 만드는 해석의 틀이 또는 정신적인 소프트웨어가 바로 문화 II이다. 그러면 독일인의 Rule을 중시하는 관행 이면에는 어떤 문화 II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문화 II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연구자의 해석의 산물이다. 비전문가들이 문화 II를 보는데 있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이들에게는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해석해내고 또는 개념화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화연구전문가 Geert Hoftstede는 독일인이 Rule을 중시하는 것은 '개인주의'라는 가치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면 한 고객이 다른 고객보다 우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Rule을 중시하는 태도의 표현이다. 여기서 개인주의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이 점에서 보면 독일의 문화 II는 '개인주의'라는 개념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Edward Hall은 독일의 문화 II는 '저맥락 차원의 문화'라고 특징 지울 것이다. 그의 해석에 의하면 저맥락 문화일수록 의사소통에 있어서 사람보다 사실을 중시하기 때문에 Rule이 사회적인 관행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같은 방법으로 한국사람들의 'Title을 중시하는 태도'이면에는 독일 사람의 문화와 전혀 상반되는 '집단주의'또는 '고맥락 문화'또는 '서열/위계질서 문화'가 문화 II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의 연구관심이 문화 II를 찾아내는데 집중되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계화로 인해 눈에 보이는 문화차이가 아무리 감소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 머리 속에서 존재하는 '정신적인 소프트웨어'인 문화 II는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의 숨겨진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제시한 개념

- 고맥락 문화 : 의사소통은 표현된 내용으로부터 상대방의 진의를 유추하는 단계를 중요시
                     즉, 말보다는 말을 하는 맥락 또는 상황을 중요하게 여겨 상대방의 뜻을 미루어
                     짐작
- 저맥락 문화 : 의사소통이 주로 표현된(대화, 글)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러한 표현이 직설적
                     즉, 생각을 말로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에 맥락 또는 상황이 덜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