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헬레스 식당 방문기 7
어떤 댓글이든 글을 쓰는 에너지로 전환이 되는군요.^^
졸필에 관심을 주시고 좋아라 하시는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살면서 후회되는 것 중 하나가 고등학교 다닐 적에 왜 더욱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교과서와 친하기 보다는 잡다한 책들, 주로 소설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야기라면 박경리 최명희 같은 쟁쟁한 분들의 소설부터 아이작 아시모프로 대표대는 SF, 삼국지처럼 반 무협 반 역사 소설(물론 김용, 고룡님도 많이 뵈었죠), 만화책까지 가리지 않고 잡다하게 읽었습니다.
그 때는 참 일본 만화를 많이도 읽었는데, 당시 한국 작가분들이 그리시던 만화 내용이 주로 중고생들의 학원라이프를 그린 것이 많았습니다. 이런 만화들은 요즘 시쳇말로 일진이라는 학생들의 주먹질을 미화하거나 개그 또는 연애 등을 소재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그 당시 제가 읽던 일본 만화는 주제와 소재가 정말 다양했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 한국만화와 같은 주제 소재를 사용하고 있는 만화도 많았지만 그에 비해 소방관이나 경찰관, 의사 등의 전문 직업의 세계를 심도 있게 다루거나, 요리나 무술같은 전문 분야에 대한 탐구 등 한국 당시 한국 만화에서 다루지 않던 내용들로 만화를 읽는다는 즐거움을 넘어 교양과 전문지식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창구로서 기능을 하기도 했었죠.
고3 시절에 읽었던 수없이 많은 만화 중에 ‘일평’이라는 만화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검도시합을 보고 매료되어 검도를 시작하지만 동시대에 최강 라이벌 덕에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 일평은 대학교 졸업 후 그 라이벌이 있는 경찰서의 경찰이 됩니다. 경찰 기동대가 되어 검도에만 정진하려 했던 계획과 달리 파출소에 배속되어 어려 사건을 겪죠. 뛰어난 검도 실력 덕에 경찰봉만으로 범인들을 제압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총에 겨냥당하는 것 보다 총을 겨누는 것이 더욱 무서운 것임을 알고 나서 더더욱 검도에 매진하죠. 뭐... 그런 내용입니다.
(저처럼 할 일 없으신 분은 토렌트 등등에서 다운받아 읽어보십시오. 웬만한 드라마보다 재미있습니다.)
이 만화를 읽으면서 나도 대학에 가면, 입시가 끝나면 검도를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고 실제로 그렇게 검도를 시작했습니다. 검도를 시작하고 나서는 흔히 대한 검도라 불리는 대한 검도회 소속의 죽도 경기가 중심인 검도뿐만 아니라 임동규씨가 <무예도보통지>를 옥중에서 재해석해 결성한 단체인 민족무예24반 경당이나 해동검도, 그리고 해동검도의 두 근간 중에 하나인 기천까지 참 다양한 무술들을 겪어봤죠.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하이텔. 지나간 그 시절 소위 4대 피씨통신을 기억하실겁니다.
아련하지요?
ATDT 014....
그리고 손톱으로 칠판을 긁어 내려가는 듯한 모뎀 연결음 후에 파란 화면에 하얀색 텍스트가 한가득 펼쳐집니다. 당시 저는 천리안 무술 동호회의 부시삽을 맡고 있었습니다. ㅎㅎㅎ 시삽.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 말이네요. 부시삽이라는 타이틀 덕에 1-2년을 전국 방방곡곡 정모나, 소모임에 참 많이 따라다녔더랬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시는 관장님도 계셨고, 태권도 유도 등의 체육특기생, 그리고 저처럼 취미로 하시는 분들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 시절 회원님들 중에는, 최영의가 아직 살아 있을 때 그분을 직접 만나 교꾸신가라데를 시작하고 도장까지 차리셨던 형님, 그 형님 술 한 잔 마시면 나오는 레파토리가 “내가 최씨 할배 땜에 전도유망한 ROTC 때려치우고 이게 뭔 고생이냐” 였던 것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또 한 분은 검도를 하시던 형님인데 그 분도 나중에 도장을 차리셨죠. 그분 천리안 아이디가 jl69349였습니다. (참...이런거 기억도 잘하죠. 그래서 어떤 분이 집착이 심하다고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형님 말로는 그게 군 시절 자기를 천국으로 보낼 뻔 했던 오발사고의 크레모어 일렬번호라고 하더군요. 세월이 많이 흘러 그분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강술 한 병을 비웠더랬습니다.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몇 달 전 운동 후 차량 운행 중에 사고가 나서 세상을 뜨셨다고 하더군요. 조금 일찍 소식을 찾아볼 걸 하는 후회가 들더군요.
동호회 활동 덕에 전국을 다니면서 이러저러한 음식을 먹어볼 기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대학생 주머니 사정이야 뻔하니 뭐 비싼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까요? 동호회 분들 중에 직장인 형님들 누님들이 사주시면 맛나게 먹는 게 제 일이었죠.
한 번은 광주에 갔을 때 였습니다. 함께 운동을 마치고 체육관으로 족발과 순대 그리고 어른용 음료수를 시켰습니다. 힘도 좀 썼고 허기도 지고해서 열심히 먹고 있는데 앞에 앉으신 광주분이 순대를 초장에 찍어 드시네요. 참 놀랐습니다. 윗동네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순대에 어울리는 것은 뻘건 양념 소금과 새우젓이 제 상식이었던 시절이니까요. 후에 알게 되었지만 전라도분들은 족발이나 순대를 초장에 찍어 드시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더군요. 그에 비해 경상도 지역 분들은 순대를 막장이라는 하는 양념된장에 제주도는 간장에 드신다고 합니다. 하긴 원래 맛있는 음식이니 뭐에 찍어 먹은 들 맛이 없겠습니까?
정말 많은 종류의 순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나 다른 여러분의 뇌리에 떠오르는 공통점은 돼지라는 재료를 베이스로 한 순대일 것입니다. 돼지피가 들어가는지, 당면이 더 들어가는지, 두부가 들어가는지 등등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 한국의 순대의 대표 재료는 돼지입니다.
하지만 순대를 꼭 돼지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강원도만 가더라도 오징어 순대가 있지 않습니까? 조선시대 음식디미방 등의 요리책을 살펴보면 돼지순대 말고도, 소나 개, 양, 명태, 민어 등을 이용한 순대가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아, 특이한 것은 곰 내장으로 요리한 곰순대라는 것도 존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네요. 이런 내용들을 살펴보면 보면 순대가 단순히 북쪽 지역 음식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해방이전까지 북쪽은 돼지고기를, 남쪽은 돼지보다 소고기를 즐겼기 때문에 돼지고기로 만든 순대가 자연스레 이북음식으로 굳어진 것이겠죠.
순대는 만주어로 피와 창자를 가르키는 ‘셍지두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셍지두하라는 발이 변형 되어 순대가 되었다는 것이죠. 순대의 어원이 어찌 됐던 간에 동물의 창자에 고기나 야채등을 넣고 찌는 음식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동물의 피로 만드는 블랙푸딩이나 소지지, 롱가니사 등이 순대의 사촌 정도가 되겠네요. 제가 가본 순대집 중에 ‘코리안 소시지‘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는 집도 있었죠.
근대화 이전에는 돼지로 만들었든 개나 소의 내장으로 만들었든 순대는 상당히 고급 요리였습니다. 이러한 순대가 저 같은 서민들도 즐길 수 있는 값싼 음식이 된 것은 1970년대부터 대규모 양돈이 시작되며 였습니다. 안심과 등심 등 외국인이 선호하는 부위를 수출하고 난 뒤 남은 부분이 내수용을 풀린 것이죠. 이 때부터 삼겹살 등의 새로운 식문화가 출현합니다. 순대 역시 이러한 시류에 따라 당면을 넣은 저렴한 순대가 공급됩니다. 퇴근길 순대에 대포한잔 하던 신림시장의 좌판이 커지고 수요가 많아지자 근처 구로공단에 순대 공장이 생기고 그 결과로 지금 순대 타운이 들어섰습니다.. 그 덕에 지하철 2호선 타고 신림역에 내리면 싸고 푸짐한 순대볶음을 맛볼 수 있게 되었죠.
한 일 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놀러오신 아는 형님(뭐 이동네 놀러 오시는 형님들이야 ‘돈술여자’ 가 목적이신 분들이죠) 만나서 간단히 한 잔 하려했죠. 시청후미촉의 감각을 다 사용해 느껴야 한다는 와인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단연 술은 남자답게 벌컥벌컥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막걸리가 좋았고 맥주가 좋았습니다. 필리핀 살기 시작하면서 한국보다 맛좋은 맥주가 한국 보다 저렴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니 밥배와 술배가 합쳐졌나 봅니다. 자연스레 소주로 주종이 옮아갑니다.
놀러온 사람이 사야지 하면서 비싼 거 사주신다는거 그냥 소주나 한 잔 하자고 말씀드리고 필즈 요지에 자리잡은 ‘송일국’식당에 들어갑니다. 순대볶음을 시켰습니다. 제가 당면을 넣은 찰순대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순대볶음에는 찰순대가 제 맛을 내줄 수 있는 재료입니다. 오리지널 돼지 순대는 그 본연의 맛이 너무 좋습니다. 그에 비해 고급 중식재료 삭스핀처럼 별다른 특징이 없어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는 재료. 그게 찰순대라 생각합니다. 매콤 달콤한 양념에 깻잎 몇 장이면 웬만큼 맛을 낼 수 있는 게 순대 볶음입니다. 신림동처럼 맛나게 볶아낼 수는 없어도 기본 빵은 해줄 수 있죠.
소주 한 두 잔 기울이며 한국생활과 필리핀 생활의 고충을 서로 토로해봅니다. 놀러오신 분의 입장에서는 천사들의 도시에 사는 제가 엄청 부러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행지가 아니라 생활 터전이 되면 부러울 것도 없다는 사실을 여기 사시는 교민 여러분들은 잘 아실테죠. 술이 몇 순배 더 돈 후에 순대볶음이 들어옵니다.
어머, 순대탕이 왔네요.
마치 선심 쓰듯이 당면을 한 움큼 서비스로 더 넣어주신 것처럼 순대 안쪽에서 흘러나온 당면들이 차마 ‘순대볶음’이라 말하기 힘든 그 무언가를 담은 접시를 채우고 있습니다. 한국 사장님이 상주하는 식당도 아니고, 안주가 중요한 술꾼들이 오는 식당도 아닙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죠. 필리핀 어디 가서 식당 종업원들이 제대로 된 순대 볶음을 먹어봤겠습니까? 사장님 시간이 되신다면 레시피만 알려주시지 마시고 가끔 솜씨를 발휘하셔서 ‘이게 제대로 된 음식이다‘라고 각인 시켜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본 이 식당 간판이 이 지역에 3개 이상인 만큼 성공하신 사장님이시죠. 현재 식당 운영 시스템대로도 이윤을 창출하실 수 있으시니 굳이 바꾸실 필요는 없으시겠지만서도요.
제가 기대한 음식 말고 다른 음식이 나오자 이런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 식당에서 계산 미스가 나는 경우요. 저는 식당에서 계산서를 받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값을 치르고 나오는 편이었지만, 예전에 알던 어떤 분께서는 항상 꼼꼼히 계산서를 체크하셨습니다. 그분 말씀이 “이 식당은 저렴한 가격에 딱 그 정도 맛이 나서 자주 오기는 하지만, 계산이 티미해. 가끔 주문안한 것도 넣고 그래.”
이 식당에 안가본지가 꽤 되어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분이랑 자주 이곳에 다닐 때는 실제로도 가끔 주문 안한 항목이 청구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일부러 바가지를 씌우려고 그랬다기 보다는 정말 단순한 계산 실수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계산서를 포스기로 출력하지 않고 손으로 쓰다보니 생기는 실수였겠지요. 좀 투자 하셔서 포스기라도 하나 하시면 없어질 일입니다. 아무튼 그 덕에 그 후에 계산서를 꼼꼼히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순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가 꼽는 이 근방 최고의 순대는 냉면집에서 내는 순대입니다. 차림표에 순대 볶음은 없지만 순대 전골을 하는 그 집 순댓국이 그래도 이 근방 최고입니다. 밀면집에서 내는 돼지국밥에 비하면 서너 등급은 위에 있습니다. 순댓국 말고 뼈다귀탕 등의 해장국 등도 내시기 때문에 영업시간은 다른 식당과 다르게 아침부터 늦은 저녁 시간까지입니다. 아침 시간에 가면 해장하러 오신 분들이 많이 보이십니다. 배추김치보다는 깍두기가 맛있더군요. 원가 등의 문제로 코리안 라디쉬가 아니라 길다란 필리핀 무를 사용했지만 그래도 깍두기 맛 괜찮습니다. 제가 김치 전문가가 아니라 틀린 말씀일 수도 있지만 소금에 많이 절이지 않고 새우젓을 넣은 듯한 깍두기는 많이 짜지 않고 시원한 게 좋았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순대에 들어가는 내장이 조금 덜 다양하네요. 순대 잘하는 집에 가면 허파 간 등도 함께 육수에 끓여내는데 이 집은 이 같은 돼지 부속은 사용하지 않는다 하세요.
한국에서도 순대를 직접 만들지 않고 받아쓰시는 식당 중에 허파, 간 등을 취급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데 냉면집 사장님에게 '순대 어디서 받아 오시는 거에요?’ 라고 묻기가 뭐해 물어보지는 못했네요. 나름대로 꽤 유명한 마카티나 말라테에 순댓국을 내는 식당에서도 당면이 들어간 ‘가짜’순대를 사용하고, 냉면집 순대같은 퀄리티의 순대를 취급하지 않는 걸로 보아선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공급처가 있는 것은 아닌 거 같기도 하고요. 실은 전문적 공급처가 있다면 제가 사서 저희집 냉장고에 쟁여두고 먹고 싶네요.
아무튼 이 먼 타국 땅에서도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게 문 닫지 않고 영업하시는 식당 사장님들께 감사드리며 이번 글을 마무리지어봅니다.
AI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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