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피플파워 30주년  

경제난·정치적 부패 시달려 
“마르코스 독재 때가 황금기”  

마르코스 아들 부통령 출마  
여론조사 지지율 급속 상승  
부인은 의원, 장녀는 주지사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1989)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피플파워’ 혁명이 이번 주 30주년을 맞은 가운데, 부통령 선거에 출마한 마르코스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59) 상원의원이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등 독재의 유산이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다.

AFP에 따르면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25일 마닐라 북동부 케손시티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피플파워 혁명 기념식에서 “마르코스 독재 치하에서 겪은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마르코스의 통치 시기는 황금기가 아니었으며, 우리 역사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국민들은 최근 이어지고 있는 가난과 정치적 부패 탓에 마르코스 정권을 황금기로 기억하며 부통령직에 도전 중인 마르코스 주니어 상원의원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현지 여론조사업체 SWS가 지난 5∼7일 유권자 1200명을 상대로 조사해 23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마르코스 주니어 상원의원은 26%의 지지를 얻어 경쟁자인 프란시스 에스쿠데로 상원의원과 동률을 이뤘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부통령에 당선된 후 차기 대통령직에 도전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은 오는 5월 대통령 선거와 함께 부통령, 국회의원, 주지사 선거를 치른다. 독재자 마르코스는 망명 후 사망했지만 그의 부인과 아들딸들은 필리핀에서 선출직 의원이나 주지사를 지내고 있다. ‘사치의 여왕’으로 불려 온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87)는 하원의원, 장녀 이미는 주지사를 지내고 있는데 모두 연임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성 없이 정치권력 확장에만 몰두하는 마르코스 일가에 대한 독재정권 치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반발은 커지고 있다. 마르코스 치하 피해자들은 22일 마닐라에서 집회를 열고 “더는 마르코스가 없어야 한다”며 독재의 복귀를 막기 위해 마르코스 주니어 상원의원의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아키노 대통령도 마르코스 주니어 상원의원을 향해 아버지의 잘못을 인식하고 사죄하라고 촉구하는 한편 “마르코스 주니어가 아버지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하느냐”며 유권자들에게 지지 철회를 호소했다. 에드윈 라시에르다 대통령궁 대변인은 “독재의 유령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며 “독재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된 마르코스는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독재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이 기간에 100억 달러(약 12조3420억 원)를 부정 축재하고 체제에 반발하는 이들을 고문하고 살해, 수만 명이 피해를 봤다. 결국 1986년 2월 22∼25일 필리핀 국민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마르코스는 21년간 지킨 권력을 내려놓고 하와이로 망명, 1989년 72세를 일기로 숨졌다.

김대종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