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필리핀에 입사시험 치러갔다 봉변"…신고하려 했지만 당장 해줄 것 없어

 

시험을 치러 필리핀에 갔던 수험생이 납치 강도를 당한 뒤 사흘 만에 돌아오는 일이 발생했다. 피해 당사자는 다행히 무사히 귀국했지만 한국 경찰의 안일한 대처에 두 번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창락(29·창원시 마산회원구) 씨는 지난달 19일 일본 해운회사 입사에 필요한 시험을 치고자 필리핀 마닐라로 갔다. 그는 20일과 21일 이틀간 시험을 치고 22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20일 1차 시험을 마친 창락 씨가 패스트푸드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필리핀인 할머니와 임신한 여성, 젊은 여성, 꼬마가 '어디서 왔느냐', '왜 왔느냐' 등을 물어온 것이었다.

자주 받는 질문이라 의심 없이 대답하던 창락 씨에게 꼬마가 초콜릿을 건넸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두 번째 건넬 때는 미안한 마음에 받아먹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창락 씨는 "초콜릿을 먹은 후부터 어떤 생각이나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일행을 따라 어디론가 향했다. 큰 저택에 도착한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침대를 보고는 자야겠다는 생각만 들어 그대로 잠들었다. 2~3시간쯤 잤을까. 꼬마 두 명이 집으로 돌아가라며 창락 씨를 깨워 택시비를 쥐여줬다. 휴대전화와 지갑이 잘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곧장 호텔로 갔다.

숙소에 도착한 그는 2차 시험을 치러 갈 생각에 휴대전화 전원을 켜는 순간 동시에 메시지 알람이 계속해서 울렸고 곧이어 한국에 있던 누나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의 누나는 얼른 짐을 싸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알고 보니 창락 씨는 몇 시간 잠들었던 것이 아니라 20일 저택에 도착한 후 21일 하루를 건너뛰고 22일 돌아온 것이다. 그가 사라진 동안 가족들은 경찰서와 영사관에 실종 신고를 하고 연락을 애타게 기다렸다.

창락 씨 아버지는 "21일 회사로부터 실기시험을 보러 오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고 아들이 죽었거나 며칠 후 돈을 요구하는 전화가 올 것으로 생각했었다"면서 끔찍했던 심정을 밝혔다.

귀국해 가족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던 찰나 그는 카드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하루 출금 한도 금액이 2000달러인 자신의 카드에서 사흘 동안 약 800만 원이 인출됐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인 23일 피해를 알리고자 인근 경찰서를 찾은 그는 수사 의뢰를 하려 했지만 기분만 상해 돌아왔다고 전했다. 창락 씨는 "경찰서에서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아닌데 왜 이곳에 찾아왔느냐는 식으로 돌려보내려 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납치됐다가 겨우 살아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자신들 일이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서럽고 화가 나 발길을 돌렸다"며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가 무슨 소용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경찰서 관계자는 "당장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절차를 설명하고 조사를 받으라고 요청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내국인이 국외에서 피해를 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김부익 경남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대장은 가까운 경찰서를 찾으면 된다고 했다. 그는 "외국에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내국인이 피해를 봤다면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경찰이 조사하는 것이 맞다"며 "특히 필리핀에는 한국 경찰이 주재하고 있어 피해자 조사 내용을 필리핀 측에 보내면 현지 경찰과 공조 수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