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모스 특사 파견 제안…양국관계 급진전 전망도 

 

남중국해 영유권 판결 이후 중국과 필리핀이 고조되는 양국간 긴장을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양국 국민 사이에서는 서로를 자극하는 감정적인 움직임이 계속 이어지는 형국이다. 

18일 중화권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중국측에 협상 의사를 타진해왔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신임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 14일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을 특사로 베이징에 보내기로 하자 중국도 이에 화답하고 나섰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특사 파견 발표 당시 "전쟁은 결코 옵션이 아니다"는 발언으로 중국에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 의사를 전했다. 

그는 "중국은 줄곧 필리핀측에 양자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중국은 결코 필리핀과 대화의 대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모스 전 대통령과 중국 지도부의 만남은 남중국해 판결로 악화일로였던 양국 관계 개선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3년 1월 필리핀이 남중국해 영유권 소송을 제기한 이후 양국 고위당국자의 접촉은 거의 없었다. 

2014년 베이징과 2015년 마닐라에서 각각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당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베니그노 아키노 전 대통령이 잠시 의례적인 접견을 했을 뿐이다.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쑤하오(蘇浩) 중국 외교학원 교수는 "라모스 전 대통령이 특사 제안을 거부하더라도 두테르테 대통령은 대타를 찾을 것"이라며 "현 단계에서는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는 긴장완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중국이 자국의 고속철도 건설에 투자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오는 26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중국과 필리핀은 양자 관계 개선을 논의할 기회가 있다.

자오장린(趙江林) 중국 사회과학원 아태연구소 부연구원은 "선거유세 과정에서 성장 우선 정책을 공약했던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과 경제관계를 강화하는데 있어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 

관측통들은 라모스 전 대통령의 방중으로 먼저 양국간 협상을 위한 틀을 마련하는데 중점을 둔 뒤 다음 회의에서나 남중국해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양국 지도부의 이런 입장과는 달리 양국 국민과 언론매체 사이에서는 서로에 대한 강경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의 소셜미디어에선 남중국해 판결 이후 민족주의, 애국주의 정서가 팽배해지며 필리핀산 망고 불매운동과 함께 필리핀을 헐뜯는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필리핀산 말린 망고를 판매하는 타오바오(淘寶) 쇼핑몰 상인들은 최근 '남중국해 수호' 등의 구호와 함께 "지금부터 판매를 중단하고 재고품도 폐기처분하겠다"며 "필리핀을 굶겨 죽여야 한다"는 섬뜩한 주장까지 내놨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상에서는 필리핀 대사관, 말린 망고 등이 검색어 순위에 오르며 필리핀산 제품 불매운동으로 항의의 뜻을 전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남중국해 중재판결에 참여한 재판관 5명이 사실상 필리핀을 위해 유상 서비스를 한 셈이라는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주장에 대해 친중국 성향의 홍콩계 매체 봉황망은 이번 중재소송에 3년간 2천600억 유로(328억원)의 비용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산하며 논란을 부추겼다. 

봉황망은 "국제사법재판소(ICJ)나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재판관은 독립성,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유엔으로부터 급여를 받지만 PCA 재판관은 다르다"며 "필리핀은 연간 재정의 2천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중재소송에 쏟아부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모두 3천만 달러를 썼다는 필리핀측 변호인의 발언을 인용하며 필리핀에서 미국에 이 자금을 '정산'해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필리핀에서는 중재판결 이후에도 중국이 분쟁 해역에서 필리핀 어선의 조업을 계속 가로막자 분노가 커지고 있다. 필리핀 어민들은 중국이 점유하고 있는 스카보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黃巖島>, 필리핀명 바조데마신록)에 상륙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에 대한 필리핀인들의 중국 항의 시위[EPA=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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