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조인 단체 "초법적 처형 우려"…사형제 부활 추진 반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사면 카드'까지 꺼내들며 경찰의 공격적인 마약 단속을 촉구했다.

20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최근 한 대학 동문 행사에서 경찰관을 비롯한 법 집행관들이 마약 매매 용의자를 사살했다가 형사책임을 지게 되면 적극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사법부나 다른 헌법기관이 우려를 제기해도 매일 10∼15명의 경찰관과 군인을 사면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면장에 미리 서명해 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6년 뒤 퇴임할 때 자신에 대한 '셀프 사면'도 고려할 것이라도 덧붙였다.

경찰과 군에 총기 남용과 같은 문제가 불거져 형사처벌을 받을 것을 걱정하지 말고 대통령 명령에 따라 마약과의 전쟁에 전력을 쏟으라는 주문이다.

다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 단속 과정에서 증거를 조작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AP=연합뉴스]

 

필리핀 정부는 마약 억제를 위해 학생들에 대한 마약검사도 검토한다.

레오노르 브리오네스 교육장관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 근절 정책에 따라 학생 마약검사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브리오네스 장관은 마약검사를 하더라도 학생들이 마약 용의자로 지목됐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학부모 동의 하에 표본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정부는 현재 경찰과 군인을 상대로 마약검사를 해 양성 판정이 나오면 해고나 전역 조치를 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경찰에 자수하는 마약 용의자 행렬[AP=연합뉴스]

 

주필리핀 중국대사관은 19일 성명을 통해 "중국 정부는 국적과 관계없이 마약범을 처벌해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며 필리핀의 마약 소탕전에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성명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 주말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마약상을 거론하며 기회가 되면 중국 측에 불만을 제기하겠다고 말한 이후 나왔다.

"마약범을 죽여도 좋다"는 두테르테 식 마약 소탕전에 대해 국내외 인권단체에 이어 해외 법조인들도 우려를 표명했다.

판사와 변호사로 구성된 국제법학자회(ICJ)는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필리핀에서 마약 용의자 사살이 늘고 있다"며 "초법적 처형을 부추기는 것 같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다.

ICJ는 또 "사형제가 다른 처벌 방식보다 범죄를 억제한다는 증거는 없다"며 필리핀 정부의 사형제 부활 추진에 반대했다.

필리핀에서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 5월 9일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지금까지 300∼400명의 마약 용의자가 사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약검사 받는 필리핀 경찰관들[EPA=연합뉴스]

 

한편 두테르테 대통령은 베니그노 아키노 전 정부가 서명한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존중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필리핀은 산업화 시대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경제 개발을 위해서 온실가스 감축을 규정한 기후협정을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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