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모독하는 안장 막아야" 대법원 청원·반발 시위…부통령도 비난

필리핀에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국립 '영웅묘지' 안장 허용에 대한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14일 현지 GMA 방송 등에 따르면 최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수도 마닐라 영웅묘지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안장을 준비하라고 군에 지시하자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마르코스 가문에 우호적인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자 군인 출신인 그를 영웅묘지에 안장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다만 반대 시위를 하겠다면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살아있다면 99세 생일을 맞는 다음 달 영웅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필리핀 일로코스 노르테 주에 안치돼 있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AFP=연합뉴스]

 

그러나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계엄 시절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모임(SELDA)은 이번 주 대법원에 그의 영웅묘지 안장을 막아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트리니다드 에레라 SELDA 대변인은 "독재자의 영웅묘지 안장은 폭압에 맞선 국민의 역사적 투쟁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영웅이 아니라 살인자이자 고문자"라고 비난했다.

필리핀의 전국 1천400여 개 가톨릭계 학교로 구성된 가톨릭교육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영웅묘지 안장 허용을 재고하라고 요구했다.

이 단체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국민과 국가에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영웅묘지 안장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바친 많은 영웅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시민단체 회원 등 8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영웅묘지 안장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두테르테 대통령과 소속 정당이 다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은 "어떻게 나라를 강탈하고 많은 국민의 죽음과 실종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영웅묘지에 안장할 수 있냐"며 "독재 치하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더 깊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AKR20160814029400084_03_i.jpg

1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마르코스 전 대통령 '영웅묘지' 안장 반대 시위[EPA=연합뉴스]

 

국제 온라인 청원사이트 '체인지'(change.org)에서는 지난 5월 24일부터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영웅묘지 안장에 반대하는 청원 운동이 벌어져 지금까지 네티즌 2만8천여 명이 서명했다.

이 같은 반발에 대해 살바도르 파넬로 대통령 법률고문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영웅묘지 안장을 승인한 것은 관련 법규 위반이 아니라고 일축하며 안장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때라고 말했다.

갈수록 논란이 커지자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은 "국민이 결정하도록 하자"며 국민을 대변하는 의회에 최종 결정권을 주자고 제안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장기 집권에 나섰다가 1986년 '피플 파워'(민중의 힘) 혁명으로 사퇴하고 하와이로 망명, 1989년 72세를 일기로 숨졌다.

라모스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1993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시신을 하와이에서 필리핀으로 옮겨오는 것을 허용했다.

필리핀 국립 '영웅묘지'[EPA=연합뉴스]

 

[email protected]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8/14 12:3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