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쓰고 버리는’ 비정규직 관행 없애라”…졸리비·PLDT 등 대기업 직격탄 필리핀도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노동법과 노동 관행을 재검토하는 동남아시아 국가 대열에 합류하면서, 그동안 더 큰 이윤을 위해 단기계약을 남용해온 대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일본 닛케이아시안리뷰의 7일 보도에 따르면 필리핀 노동법은 근로자가 6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칠 시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필리핀 기업들, 특히 요식업·소매유통업·제조업계 등에서 수습 기간 5개월 후 직원을 해고하고 새 직원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이 규칙을 회피하고 있다. 이같은 관행은 ‘엔두(endo; 계약 끝)’라고 불린다. 이는 계약 만료(end of contract)의 줄임말로, 기업은 이를 통해 인건비를 낮추고 쉽게 근로자들의 급여를 조정할 수 있다. 반면 근로자들은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처하게 만들어왔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선거운동 당시부터 이 ‘엔두’를 없애겠다고 주장해 왔다. 노동조합들의 지지를 업은 두테르테 정부는 기업들에게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체적으로 노력할 것을 압박해왔으나, 진전을 보이지 않자 결국 정부 차원에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5월 노동절 연설에서 “이같은 부끄러운 노동 관행이 종식될 때까지 정부는 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러한 방침에 따라 필리핀 노동고용부는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단기 근로자 수가 많은 기업 상위 20곳을 공개했다. 이 목록에는 필리핀 패스트푸드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졸리비푸드와 필리핀 이동통신사 PLDT 등이 이름을 올렸다. 특히 졸리비푸드는 ‘엔두’ 근로자 수가 무려 1만 4960명에 달해 1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일본의 이토추 상사의 자회사인 돌 필리핀이 1만 521명으로 2위, PLDT가 8310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노동부에 따르면 이번 목록은 필리핀의 90만 개 이상의 기업 중 10만 개만 대상으로 조사됐다. 노동부는 두테르테 집권 이후 17만 6000명의 ‘엔두’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긴 했으나 여전히 22만 4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단기계약을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의 2016년 자료에 따르면 필리핀 전역의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133만 명에 달한다. 필리핀의 이러한 움직임을 두고 매체는 “필리핀 정부의 단속은 노동자 보호 조치를 확대하려는 동남아 지역의 트렌드와 부합한다”며 “이 지역에서 낮은 인건비로 이익을 보려던 해외 기업들은 이러한 생각을 넘어 장기적 관점의 기업 운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은 동남아시아 전 지역에서 확산돼 왔다. 2013년 발효된 베트남의 노동법 개정안에는 아웃소싱 허가 분야를 17곳으로 제한하고 1년 단위 고용 계약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인도네시아는 아웃소싱 허가 분야를 보안 서비스 등 5개 분야로 제한했으며, 태국은 2008년 동일한 업무를 하는 경우 정규직과 계약직 직원 간 차별을 금지하기도 했다. 일본 인력업체 ‘JAC 리쿠르트’ 소속 구로자와 토시히로 연구원은 “노동자를 보호를 강화하려는 동남아 국가들의 추세는 피할 수 없다”면서 기업들이 이에 따른 비용증가 등 대한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