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특별한 증상 없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앓고 지나간 환자가 1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다른 나라에서 진행된 항체 검사를 토대로 파악한 결과다. 무증상자는 언제든 코로나19를 전파할 수 있기 때문에 ‘종식’ 대신 ‘피해 최소화’로 방역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오명돈 신종감염병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은 21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 코로나19 무증상 감염자는 파악된 환자의 열 배 규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종감염병중앙임상위는 국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대표 모임이다. 이날 기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는 1만2421명이다. 위원회 분석대로라면 확진자에 포함되지 않은 국내 무증상 감염자는 12만 명을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위원회는 일본 중국 미국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의 항체 검사 결과를 토대로 이런 분석을 내놨다. 스페인에서 올해 4월 27일 국민 6만 명을 무작위 검사했더니 5% 정도가 코로나19 항체를 갖고 있었다. 인구 4500만 명 중 225만 명이 이미 앓고 지나갔다. 확인된 환자 23만 명의 열 배에 이른다. 오 위원장은 “무증상 감염자가 열 배 이상 많기 때문에 ‘깜깜이 감염’ ‘n차 감염’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는 “방역대책의 최종 목표는 코로나19 종식이 아니라 유행과 확산 속도를 늦추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우리 의료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환자가 발생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상 곧 포화…환자 선별 입원시켜야" 국내 코로나19 무증상 확진자 규모가 실제보다 많다면 방역당국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증상이 있는 확진자와 접촉자를 찾아 격리해도 무증상 환자가 어디선가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닌다면 코로나19를 완벽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가 항체검사를 도입해 국내에 코로나19를 앓고 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재차 주문한 이유다. 오명돈 교수는 “항체검사는 국내에 코로나19 유행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판단하는 수단”이라며 “항체 양성률을 알면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역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위한 역전사중합효소연쇄반응(RT-PCR) 검사는 몸속에 남은 바이러스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코로나19를 앓고 난 뒤 면역이 생긴 사람은 확인할 수 없다. 반면 항체검사는 면역반응을 보기 때문에 코로나19를 앓고 난 흔적을 파악할 수 있다. 국내에는 아직 표준 면역검사법이 마련되지 않아 코로나19 항체검사가 도입되지 않았다. 위원회는 입·퇴원 기준도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모든 확진자를 입원시킨 뒤 RT-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사람만 퇴원시키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병상이 금방 포화상태에 다다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위원회가 국내 55개 병원에서 진료받은 코로나19 환자 3060명을 분석했더니 50세 미만 성인 확진자 중 호흡곤란 증상이 없고 기저질환도 없었던 환자가 산소치료를 해야 할 정도로 악화된 사례는 0.1%에 불과했다. 고위험군 환자를 따로 분류하는 것만으로도 병상을 최대 59.3% 확보할 수 있다. 이지현 기자 [email protected] ⓒ 한국경제 &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