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말인가, 5월초인가 내가 사는 해운대구청에서 일인당 재난지원금 5만원이 지급되었습니다. 주민센터에 가서 가족인적사항을 적고 재난지원금을 수령하려는 순간,외국인 아내는 해당사항이 없다는것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당신은 외국인이라 지급대상에서 빠졌'다고 이야기를 하니,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 몫의 무언가를 빼앗긴 표정, 실로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아내와 약 8년의 시간을 살면서, 연애초기부터 지금까지 아내에 대해 생각을 해보니 아내의 성격이 ... 뭐라 표현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는것은 없는데 굳이 말하자면 특유의 필리핀 사람답게 좀 소심한면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집안에서는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데 여러명이 모여있는곳에서 춤추고 노래하라고 하면 부끄러워서 안합니다. 그리고 집에서는 한글 읽기를 큰 소리내어서 하는데, 막상 한글교실에 가면 꿀먹은것처럼 조용합니다. 또하나 맛있는 고기를 아내가 손수구워서 먹는데 내가 많이 먹어서, 아내가 조금 먹으면 그게 그렇게 억울해서 부부싸움으로 이어집니다. 그 외에도 한국사람과 필리핀사람 사이에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무형의 존재들이 많아서 부부싸움도 많이 하곤 합니다. 남편이니까 우울한 아내를 달래주어야지요. 그래서 해운대 구청에 전화를 해서 따지기 시작합니다. 나 ; 재난지원금을 주는것 만으로도 너무 고맙다. 그런데 외국인 아내는 왜 안주냐? 공무원 ; 애초에 재난지원금을 설계할 때 외국인은 빼고 설계를 했다. 나 ; 외국인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국민배우자 아니냐? 그리고 아내도 경제활동을 하면서 세금을 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아이는 한국인이라 재난지원금을 받았는데, 아이의 엄마가 외국인이라서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다면, 이건 모순아니냐? 공무원 ; 그런 모순적인 문제점을 생각못한것은 아니었는데, 예산문제도 있고 해서 좀 이해해 달라. 나 ; 아내가 좀 우울해 하길래, 항의하는 척 하느라 전화를 한것이다. 귀한시간 빼앗아서 정말 죄송하지만 아이는 한국인, 엄마는 외국인으로 분류하는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다시한번 재난지원금에 대해 감사하다.............. 그런식으로 통화를 끝내고, 아내에게 재난지원금 5만원을 체념시켰습니다. 그 이후에 국가재난지원금이 나와서 아내몫 20만원짜리 카드를 주면서, 그동안 사고 싶었던것 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돈이 모자라면 더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아내는 무엇을 살까? 여름 티셔츠 두장, 그리고 얼굴이 땡기는지 수분 많은 화장품을 사더군요. 나도 경상도 남자라 아내에게 자잘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인데, 티셔츠 두장과 화장품에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아내에게 참 무심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우편함에 해운대구청에서 어떤 편지가 왔습니다. 저번에 지급하지 못했던, 외국인에 대한 재난지원금을 준다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편지를 보여주면서 한 마디, 아니 개뻥을 쳤습니다. 나 ; 여보, 내가 지난번에 항의했잖아. 그래서 해운대 구청에서 외국인에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했데. 아내 ; 정말?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물론 아내가 속으로는 개뻥인줄 알았겠지요 ㅋㅋ) 그 재난지원금 5만원으로, 몇 달전에 우리동네에 들어선, 비싸게 보여 가기를 주저한 럭셔리 식당에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아내가 한다는 말이, '역시 공짜가 맛있어' 행복하게 미소짓는 아내를 보면서 재난지원금 5만원의 가치를 생각해봅니다. 아내에게 우울한 얼굴을 미소로 바꾸게 해준 재난지원금. 그리고 해운대 구청장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