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해군의 미사일 호위함 호세 리잘. [군사AtoZ 시즌2-38] 하와이 인근에서 '림팩(RIMPAC) 2020'이 지난 17일부터 시작됐다. 이달 30일까지 진행되는 림팩 훈련에는 10개국에서 22척의 해군 함정이 참가한다. 림팩 훈련은 미국 주도로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매년 진행하는 해군 훈련이다. 당초 30개국에서 50여 척이 모일 것으로 계획됐으나 코로나19 때문에 규모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우리 입장으로 봤을 때 이번 림팩 2020에서 눈에 띄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필리핀이 훈련에 파견한 유일한 해군 함정 '호세 리잘(BRP Jose Rizal)'은 플랫폼(선체)과 전투 체계를 한국 업체가 만들었다. 지난달 10일 공식 취역한 호세 리잘의 첫 번째 임무가 필리핀 해군의 얼굴로서 림팩 훈련에 참가하는 것이다. 호세 리잘은 필리핀 해군이 도입한 첫 번째 미사일 호위함(guided missile frigate)이다. 필리핀의 호세 리잘 도입 과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한국이 만든 군함이 넘버 원이다' '림팩 훈련에 파견해서 필리핀 해군을 대표하는 데 손색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게 만든 호세 리잘의 선체를 세계 1위 조선 강국에서 건조했다는 것보다 더 주목되는 게 바로 전투 체계도 한국산이라는 것이다. 전투 체계는 사람으로 따지면 정신 활동에 해당된다. 선박을 잘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전투함의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잘 돌아가게 하는 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이 하드웨어를 만드는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전투 체계는 아직 방위 산업 선진국과 격차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해군의 7600t급 구축함(DDG) 선체를 한국 회사가 직접 건조하지만 전투 체계는 미국의 것(이지스 시스템)을 수입해 탑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일단 호세 리잘이 2600t급으로 크기는 작지만 전투 체계가 필리핀 정부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은 한국 방위 산업계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도전에 성공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필리핀은 호세 리잘급의 2번함 '안토니오 루나'도 올해 말부터 운용할 예정이다. 안토니오 루나는 지난해 11월 9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진수식을 가졌다.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영유권 분쟁 당사국 중 하나인 필리핀도 언제 어디서 긴급 상황이 터질지 모르는 처지다. 필리핀 정부는 지난 20일 중국 해안경비대가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필리핀 어로 장비를 불법적으로 압수한 것에 대해 중국에 공식 항의했다. 필리핀 외교부는 중국에 항의하는 문서를 보내 지난 5월 중국 해안경비대가 필리핀 어민들이 설치한 어류군집장치를 압수한 것을 비난했다. 필리핀 외교부는 또 항의 문서에서 "서필리핀해(남중국해)에서 정기적으로 해양 순찰을 하는 필리핀 항공기를 향해 중국 측이 계속 레이다 전파를 쏘는 데 대해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앞서 중국은 필리핀에서 약 230㎞ 떨어진 스카버러 암초를 강제로 점거한 바있다. 스카버러 암초를 두고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는 2016년 7월 판결에서 "중국·필리핀·베트남 어민의 전통적인 어장"이라며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국 측이 실력 행사를 통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고 필리핀도 해군과 공군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안보 상황 속에서 필리핀은 이미 한국산 경공격기 FA-50을 운용하고 있고 호세 리잘급은 앞으로 필리핀 해군의 주력 함정으로 운용될 예정이다. 필리핀이 한국산 무기를 사용한 것은 매우 오래됐다. 6·25전쟁에서 필리핀 군인 사상자가 약 400명 나왔던 희생을 치렀던 것에서 시작해 양국 군사 관계는 매우 긴밀했다. 한국군은 1993년 소형 고속정을, 1995년에는 F-5A 전투기 3대를 필리핀에 양도했다. 이 밖에 한국군이 사용하던 참수리급(PKM) 함정과 훈련기 T-41도 필리핀군으로 넘어갔다. 2017년부터는 한국 해군의 초계함(PCC) '충주함'이 필리핀 해군의 'CONRADO YAP'으로 이름을 바꾸고 남중국해에서 활동 중이다. 한국과 필리핀이 무기 체계 양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정식 무기 거래에서도 협력하고 있다는 것이 동아시아의 안보 지형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정권은 대미 자주외교를 강조하면서도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신경 쓰고 있다. 미·중이 냉전 수준의 충돌을 빚고 있는 와중에 필리핀은 서태평양의 요충지라는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국은 같은 처지에 놓인 필리핀에 향후 수십 년을 사용할 무기 체계를 수출해 양국 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할 기반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국제 정세 속에서 가능한 한 많은 우방국을 확보해야한다. 앞으로도 한국의 방위 산업 역량이 더욱 발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필리핀과 군사 협력 관계가 굳건해진다면 2020년 림팩 훈련이 양국 협력을 상징하는 한 장면이 될 것이다. [안두원 기자] 출처;https://news.v.daum.net/v/20200824150309951